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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지소미아'로 생긴 한미동맹 균열, 통상카드로 진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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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가닥]

농업 보조금 지급 중 10% 초과하는 품목 거의 없어

트럼프 요구 들어줘 양국 외교·안보에 추가악재 차단

中서 한국 들먹여 '韓 vs 美' 싸움으로 변질도 방지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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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여부는 정부의 해묵은 숙제였다. 정부는 그간 개도국 지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더는 없다고 보면서도 농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결단을 주저해왔다. 하지만 한국이 자칫 미중 갈등에 얽힐 수 있다는 판단에 정부는 결국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미국이 개도국 지위를 박탈해 중국을 누르려고 할 때 중국이 다른 선진국들도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며 한국을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균열이 생긴 만큼 한미 간 추가 악재를 피해야 한다는 점이 깊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농심(農心)을 흔들어 국내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지만 급속하게 확대되는 외교·안보적 위기가 크게 다가온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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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당국은 다음달 23일까지는 개도국 지위 포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한 일종의 ‘데드라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26일 WTO 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는 국가를 손보겠다면서 90일의 이행 기간을 부여했다.

당국은 개도국 지위를 고집한다고 해서 얻을 게 많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때 농업 부문에서 개도국 지위를 선언하고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 이는 우루과이라운드를 대체할 새로운 다자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유효하다. 통상당국은 향후 상당 기간 다자간 협정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WTO 다자간 협정은 모든 회원국의 동의를 거쳐야 이뤄지기 때문이다. 실제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협정으로 주목받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차기 협정에서도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려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겨 새로운 협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만에 하나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가운데 새로운 협정이 맺어져도 실제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농업 분야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한 덕분에 보조금을 최대 1조4,900억원까지 지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1~2014년의 경우 감축 대상 보조금 지급 실적은 ‘0’이었다. 2014년과 2015년 쌀 변동직불금이 각각 1,941억원과 7,257억원 지급됐음에도 감축 대상 보조금 지급 실적이 미미한 것은 개도국 지위로 받은 최소허용보조 10% 기준 덕이다. 보조금 지급 규모가 전체 품목 생산액의 10%에 미치지 못하면 지급한 보조금 전액이 지급 실적에 잡히지 않는다.

실익은 없는데 고수할 경우 잃을 것은 많다. 당장 미국의 공세가 걱정이다. 통상당국은 WTO 개도국 지위를 둘러싼 논란의 발단을 미중 분쟁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성장세를 꺾기 위해 혈안이 된 미국이 보복관세에 더해 개도국 지위를 박탈하려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많은 국가들도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식으로 미국에 맞설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한국을 들먹일 가능성이 높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개도국 행세를 하는 국가의 네 가지 특징(△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주요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 상품무역에서의 비중이 0.5% 이상)을 나열했는데 한국은 여기에 모두 포함된다. 중국이 해당되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만약 한국이 계속 개도국으로 남는다면 중국과 인도가 한국을 방패막이로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자칫 미국 대 중국의 무역전쟁이 미국 대 한국의 싸움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도 “미국이 겉으로는 개도국 지위 유지와 무관한 척하면서도 사실상 이를 문제 삼아 무역공세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한국이 최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리면서 미국과 다소 소원해진 상태다. 한국의 이탈로 자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려 한미일 삼각안보 협력망을 구축하려던 미국의 구상이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미국의 대중 압박이 한결 수월해지는 만큼 한미관계가 부분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미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는 압박을 가하는 것은 대중 통상정책에서 우위를 가지려는 것”이라며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은 미국의 정책에 협조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한재영·정순구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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