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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한가위 특집 - 경제 진단]엄마도 이모도 지갑을 더 꼭꼭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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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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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실적 부진·임금 감소

동행·선행지수 동반 내림세

소비자심리지수 92.5 ‘비관’

“하반기 경기 반등 요소 없어”

물가상승률 사상 첫 마이너스

“정부가 투자로 경쟁력 올려야”


“취업준비는 잘되니?” “사업은 좀 어때요?”

명절에 친척들끼리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게 되지만, 이번 추석 연휴에는 이런 질문이 더욱 불편해질 듯하다. 지속되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이 올 상반기에는 주로 기업을 괴롭혔다면, 최근 들어서는 그 여파가 가계로 본격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는 하강국면의 문턱을 넘어섰으며 가계가 지갑을 닫으면서 더 가파르게 내려갈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우선 우리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는 종합지표들이 악화되고 있다.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각각 현재와 미래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지난 7월 전월보다 각각 0.1포인트(98.5→98.4), 0.3포인트(97.9→97.6) 내려가면서 2개월 연속 동반 내림세를 보였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생산과 소매판매 등 7개 지표를 종합해 현재 경기를,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건설수주액과 소비자기대지수 등 8개 지표를 종합해 앞으로 6~9개월 뒤의 경기를 보여준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경기동향에 대해 “대내외 수요가 위축되면서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라고 요약했다. 여기서 말하는 수요란 기업들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 등을 의미한다. 김성태 KDI 경제전망실장은 “경기가 부진한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하반기 반등할 요소가 없다”며 “특히 소비자심리지수가 하락하는 것을 가장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수출과 투자의 감소 속에서도 경기를 떠받쳤던 소비마저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8월 소비자심리지수(CSI)는 92.5로 전달보다 3.4포인트 떨어졌다. 4월에 101.6을 기록한 뒤 5월 97.9, 6월 97.5, 7월 95.9 등 계속 하락하며 ‘북핵 위기’가 벌어졌던 2017년 1월(92.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자들에게 생활형편과 가계수지, 경기에 대한 판단과 전망을 물어 지수로 나타낸 것이다. 100보다 크면 소비자가 경기를 낙관적으로, 작으면 비관적으로 인식함을 나타낸다.

지난 8월 지수를 세부 항목별로 보면 현재의 생활형편(-0.2), 생활형편 전망(-0.8), 가계수입 전망(-0.8), 소비지출 전망(-0.7), 현재 경기판단(-0.4), 향후 경기전망(-0.5) 등 6개 항목이 모두 하락했다. 현재 상태에 대한 판단보다 앞날에 대한 전망 지수의 하락폭이 컸다. 소비자들이 앞날을 비관적으로 보고 지갑을 닫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고 지난해부터 생산가능인구도 감소하기 시작했다”며 “국내의 구조적 상황도 좋지 않은데, 대외적 상황도 불확실하다보니 경제심리가 안 좋은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올 상반기까지는 세계 교역을 위축시켜 기업에 직접적 타격을 줬다면 하반기부터는 임금과 고용을 매개로 가계에까지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상반기 수출과 투자가 부진했지만 소비가 경기를 떠받쳐왔는데, 소비마저 부진한 모습이 나타났다”며 “기업실적 악화가 투자, 생산에 이어 고용과 임금 등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기업의 실적 악화는 임금으로 반영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전국 538개 기업(응답 기업 기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3%가 지난해보다 경기가 나빠졌다고 대답했으며, 직원들에게 추석 보너스를 지급할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65.4%로 지난해보다 4.8% 줄었다. 수출이 쪼그라든 데 이어 가계의 소비마저 줄어들면 기업은 ‘내우외환’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경기둔화는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올해 들어 전체 취업자 수가 크게 늘고 고용률도 높아지고 있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핵심인 제조업 부문 취업자는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고용동향을 보면 전체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만2000명 늘어 2년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했지만 제조업 취업자는 2만4000명 줄어들며 1년7개월 연속 감소세가 이어졌다. 가계의 가장들이 많은 40대도 취업자가 12만7000명 줄어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취업자 수와 고용률이 늘었다고 하지만 정부의 일자리 사업으로 60대 이상에서 상황이 개선된 것”이라며 “청년 입장에서는 미래 소득의 불확실성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물가상승률까지 올 들어 7개월 연속 0%대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 8월 사상 처음 마이너스로 돌아서 전반적으로 물가가 하락하며 경기가 침체하는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서 ‘불확실성 심화→기업실적 부진→임금 감소→가계소비 감소→기업실적 부진’의 악순환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현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는 하강국면에 진입하는 단계로, 이 상태가 장기화하면 침체상태로 가게 된다”며 “정부가 경제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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