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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56) 몸을 묶어 유혹을 뿌리친 오디세우스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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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디세이’(Odyssey)는 서양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유명한 귀향(歸鄕)의 노래다. 기원전 1200년쯤 에게 해를 사이에 두고 일어났던 전쟁에서 그리스 영웅들이 트로이를 공략하기까지 10년 동안의 스토리가 ‘일리아드’라면, 전쟁이 끝나고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기까지 10년간의 모험이 오디세이다.

[미니정보] 그리스 이타카(Ithaca)

영웅의 귀향을 노래한 것이지만 오디세이 안에는 수많은 알레고리와 상징으로 겹겹이 포개져 있다.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을 통해, 항상 위험과 함께 살아가는 리더들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느껴진다. 가장 오래된 리더십 이야기다. 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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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바다에서 요정 세이렌에게 유혹당하는 오디세우스. 기둥에 묶여있는 사람이다. BC 480~470년 쯤 도기에 그려진 그림. 영국박물관 소장./사진=위키피디아




첫째, 리더의 소통과 갈등조절 역할이다. 오디세우스는 호메로스가 창조해낸 인물 가운데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정신적 구심점이다. 연합군의 총사령관은 아가멤논이었다.

그의 동생 메넬라오스가 부인인 절세미녀 헬레네를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에게 빼앗긴 것이 전쟁의 원인이었다. 전편인 ‘일리아드’에서 오디세우스는 호메로스가 만들어낸 영웅들 가운데 한 명이었을 뿐이다.

초반 이야기는 아킬레우스(혹은 ‘아킬레스’라 표기하기도 함)의 분노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킬레우스가 총애하던 여자를 아가멤논에게 징발당하자 분노하며 전쟁을 보이콧 하기에 이른다.

그리스에서 가장 뛰어난 무예를 자랑하는 아킬레우스가 빠짐으로써 그리스 군대가 점차 수세에 몰리자 그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그때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오디세우스였다.

오디세우스의 적극적인 설득작업 덕분에 아킬레우스는 돌아오고 적군의 장수 헥토르를 제압하면서 전세를 역전시킨다. 내부분열로 자칫 자멸할 뻔한 상황에서 오디세우스의 갈등조절과 소통 역할은 매우 중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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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가 애정하는 여성을 빼앗긴데 대해 분노하는 장면. 루벤스의 작품./사진=위키피디아



두 번째,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이 있어도 당당히 맞서는 용기다. 오디세우스는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와 결혼하여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를 얻은 젊은 가장이었다.

참가하고 싶지 않은 전쟁에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한 처지였다. 하지만 극단적인 절망의 상황에서도 늘 긍정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 그는 호메로스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더라도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면 어찌 죽음에 이르기까지 투쟁해 보지 않겠는가?"

운명이 만들어 놓은 불행에 짓눌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일단 선택했으면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다.

한편 오디세우스가 전쟁 때문에 20년 동안 집을 비웠을 때 아들 텔레마코스를 대신 맡아서 훌륭히 양육시킨 친구가 있으니 그의 이름이 멘토르(mentor)다. 조언자와 정신적 스승을 뜻하는 멘토와 멘토링의 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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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가 전쟁으로 출정한 20년 동안 아들 텔레마코스를 대신 교육시켜준 친구 멘토르. 여기서 멘토와 멘토링이란 어휘가 생겼다./사진=위키피디아




세 번째, 스타트업 정신이다. 작품에서는 군사적인 면이 더 강하게 부각되지만 실제로는 상업적인 면이 더 중요했다. 그리스는 3면이 바다로 둘러 쌓였고 산악지대가 많다. 한국과 비슷한 지리적 환경이다.

곡물 재배가 쉽지 않아 밀보다 귀리 수확이 열 배나 더 많았다. 철제 농기구 덕분에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 도기(陶器)가 주요 주요 수출품이었다. 식품과 구리, 주석 따위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바다 건너 소아시아나 이탈리아로 가야 했다.

당시 지중해라는 바다는 ‘액체로 이뤄진 길’이자 고속도로였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미개척 땅으로 이주해야 할 필요성도 증가했으리라. 무역 아니면 약탈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걸지만 일단 성공하면 일확천금을 건질 수 있었기에 최고의 스타트업이었다. 동 지중해 쪽에 가장 번성하던 트로이였기에 그리스 본토 쪽 부족장들이 힘을 합쳐서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헬레네라는 미녀는 이야기의 극적인 효과를 더하기 위해 첨가된 것으로 보여진다. 호메로스가 노래한 일리아드의 주인공들은 먼 바다에 대한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려야 했던 당시 시대적 상황의 요구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며, 오디세우스는 진정한 바다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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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의 유혹에 시험 당하는 오디세우스와 일행을 그린 로마시대의 모자이크./사진=위키피디아



넷째, 감언이설에 속지 않는 자세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 섬에 가까이 오자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대신 자신은 부하들로 하여금 손발을 묶고 돛대에 몸을 고정시키게 하였다. 세이렌 자매들의 노래를 감상하고 싶었던 것이다.

호기심이 넘치는 사나이였기에 한 행동이었는데, 마침내 세이렌의 노래가 들려오자 그는 노래에 홀려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세이렌의 노래 소리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어서 많은 선박을 난파시켜 선원들을 제물로 삼았다.

그가 미리 일러놓은 대로 부하들은 더 많은 밧줄로 그를 꽁꽁 묶었기에 무사히 난관을 통과할 수 있었다. 세이렌이란 달콤한 말, 즉 아부나 듣기 좋은 소리다. 리더가 특히 경계해야 할 요소다. 위험이 생기면 울리는 경고 소리를 가리켜 사이렌(Siren)이라 부르는 것도 그런 연유다..

다섯째, 과감한 출구전략의 중요성이다. 트로이를 떠난 오디세우스가 항상 고난만 당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달콤한 시간이 더 많았다. 많은 여성과 여신, 요정들이 그를 유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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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 같은 몸매를 자랑하는 키르케가 새겨진 도기. 오디세우스는 그녀의 섬에서 1년간 체류하였다./사진=위키피디아




‘대리석 같은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는 키르케의 집에서 술과 향락에 젖어 1년이란 세월을 보낸다. 키르케는 동료들을 마법을 걸어 돼지로 만들었던 요녀였다.

가장 오랫동안 그를 묶어둔 파트너는 치명적 매력의 칼립소였다. 10년의 시간 가운데 무려 7년이나 칼립소와 함께 보냈으니까. 영생을 줄 테니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는 이렇게 답변한다.

"여신이여, 제발 나에게 노여움을 갖지 마세요. 정숙한 페넬로페가 자태에서나 몸매에서나 당시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압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언젠가는 죽어야 할 인간의 몸이지만 당신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이 아니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집으로 간다는 것과 귀향의 행복한 날만을 바라고 원하는 형편입니다. 또다시 신들 가운데 어느 분이 내가 탄 배를 부숴 버린다고 해도 고난을 견딜 마음을 굳게 가지고 참아내겠습니다."

귀향의 욕구가 칼립소의 육감적 매력을 능가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손수 목욕시킨 다음 화려하고 향기로운 옷을 입혀 떠나 보냈다. 진한 포도주며 물과 음식이 들어있는 부대를 가득 실어주는 것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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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아르놀드 뵈클린의 그림 ‘칼립소와 오디세우스’./사진=위키피디아



이타카(혹은 이타키)는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기업 경영으로 해석하면 회사의 비전과 궁극적 목표다.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경영의 출구전략은 항상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리더는 항상 보이지 않는 리스크와 싸워야 한다. 오디세우스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무수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갖췄으며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가득하다. 과감한 결단력도 보여준다.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작게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보다 넓게는 유럽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받아들여진다. ‘최초의 유럽인’, 혹은 ‘유럽인의 원형’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ceonoma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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