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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추석때 가장 많이 팔린 국민 와인은? 1865 Vs 몬테스 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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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야생마를 길들인 1865 수석 와인메이커 마티스 크루잗 단독 인터뷰/변화하는 칠레 기후 맞춰 수확시기 조절 오크사용 절제/몬테스 알파와 함께 ‘국민와인’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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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AP연합뉴스


골프장에서 한라운드 18홀을 돌며 65타를 친다는 것은 주말골퍼들에게는 ‘넘사벽’이겠죠. 골프장은 파3홀, 파4홀, 파5홀로 구성되는데 18개홀에서 보기 없이 파만 기록할 경우 72타를 치게되죠. 65타를 치려면 보기없이 버디를 최소한 7개를 기록해야는데 프로선수들도 하루에 7타를 줄인다는 것은 쉽지않습니다. 그러니 주말골퍼들에게 65타는 꿈의 스코어입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18홀 최저타수 기록은 ‘58타’입니다. 독특한 ‘8자 스윙’으로 유명한 짐 퓨릭(49·미국)이 2016년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이글 1개와 버디 10개를 몰아치며 12언더파 58타의 대기록을 작성했습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최저타 기록은 남자보다 1타 적은 ‘59타’입니다. ‘여자골프의 전설’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2001년 스탠더드 레지스터 핑에서 59타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LPGA에서 활약하는 ‘빨간바지의 마법사’ 김세영(26·미래에셋) 지난해 대기록을 세웠는데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에서 최종합계 31언더파 257타로 우승하면서 2004년 카렌 스터플스(미국)가 세운 72홀 최저타 기록(258타·22언더파)과 2001년 소렌스탐이 작성한 72홀 최다 언더파 기록(27언더파 261타)을 모두 갈아치웠습니다. 김세영은 대회 뒤 “여자 선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다”며 18홀 최저타 새 기록인 ‘58타’를 목표로 정했답니다. 김세영은 지난 8월 포틀랜드 클래식 2라운드에서 버디를 11개를 몰아치며 11언더파 61타를 쳐 대회 최저타 신기록과 개인 최저타 기록 동률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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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 카베르네 소비뇽


이처럼 18홀에서 65타를 치는 것은 주말골퍼들에게는 오르기 힘든 나무인데 칠레 비냐 산 페드로(Vina San Pedro) 와인 1865는 한국에서 ‘18홀 65타’에 도전하는 ‘골퍼들의 와인’이라는 마케팅을 내세워 대성공을 거뒀답니다. 사실 1865는 칠레에서 가장 큰 규모의 와인 생산자이자 2번째로 큰 와인 수출 기업인 비냐 산 페드로의 설립연도에요. 65타는 꿈의 스코어라 골퍼들에게는 마치 부적같이 여겨져 너도나도 마셨던 모양입니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와인 종류는 적더라도 1865 와인은 반드시 구비해놓는 이유죠.

덕분에 한국 와인시장에서 1865와 몬테스 알파(Montes Alpha)는 와인을 잘 모르는 ‘와알못’이라도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죠. 단일 브랜드로 한국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칠레 와인 1, 2위를 다투기에 ‘국민와인’이라는 애칭까지 얻었습니다. 몬테스의 대표 와인 몬테스 알파는 한국 시장에서 매년 70만병씩 팔려 나가며 지난해 누적판매량 900만병을 돌파했을 정도랍니다. 1865도 2003년 11월 처음 선보인 뒤 지난 6월말 기준으로 누적판매량 520만병을 돌파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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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찾은 1865 수석 와인메이커 마티스 크루잗


아이콘 와인 알타이르(Altair)에서 데일리 와인 가또네그로(Gato Negro)까지 한국에서만 비냐 산 페드로 와인 1200만명이 팔렸다니 이들에게 한국은 가장 큰 시장일수밖에 없네요. 실제 전체 1865 생산량의 45∼50%가 한국에서 팔려 한국시장이 1위이고 이어 캐나다, 미국, 브라질, 베트남, 대만 순입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유독 많이 팔리고 있으니 와인 입문자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와인이 이 몬테스 알파와 1865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기자가 10여년전 와인 초보자일때 접한 1865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못했습니다. 알코올이 강하고 탄닌도 거친데다 밸런스도 많이 부족해서 너무 센 ‘마초’같은 와인으로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사실 마트에서 1865를 저렴하게 할인판매해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해전 우연히 접한 1865는 그동안 알던 와인과는 다르게 많이 달라져 있더군요. 거친 야생마가 순한 말로 길들여졌다고나 할까요. 탄닌은 훨씬 부드러워져 목넘김이 좋고 밸런스도 잘 갖춰졌습니다.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던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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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 수석 와인메이커 마티스 크루잗


최근 한국을 찾은 1865 와인메이커 마티스 크루잗(Matis Cruzat)을 만난 뒤 그 해답을 얻었습니다. 와인은 만드는 이를 그대로 닮는다고 하죠. 크루잗은 아주 섬세한 외모와 성격을 지녔는데 1865가 섬세한 크루잗을 만나 마초의 꼬리표를 떼어버린 것 같네요. 인터뷰 내내 자기가 전하고 싶은 내용을 아주 명확한 단어로 집중력 있게 설명하는 것을 보니 와인 역시 아주 꼼꼼하게 양조하는 것 같습니다.

칠레 카톨릭 대학교(Pontificia Universidad Catolica de Chile)에서 포도 재배학과 양조학 을 전공한 크루잗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프리미엄 와인 산지인 산타 바바라와 남아공 스워틀랜드의 와이너리에서 포도재배와 와인양조 경험을 쌓았습니다. 칠레 마이포밸리의 비냐 운드라가(Vina Undurraga)에서 산타 크루즈(Santa Cruz) 와인 어시스턴트 와인메이커를 시작해 산 페드로에 합류한 것은 2013년입니다. 1865와 몰리나(Molina)의 어시스턴트 와인메이커를 맡았고 2016년 프리미엄 레인지 수석 와인메이커 임명됩니다. 그의 작품인 1865 싱글빈야드 까베르네소비뇽 2014가 2016년 와인스펙데이터 톱 100에서 59위에 오르면서 실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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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 수석 와인메이커 마티스 크루잗


“이전의 와인메이커는 소비자 트렌드보다 자신의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물론 와인메이커의 철학도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소비자들의 구미에 더 집중해요. 소비자 타깃은 20∼30대로 점점 젊어지는데 올드한 스타일을 계속 고수할 수 없지요”.

하지만 워낙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여서 한꺼번에 확 바꿀수는 없었다고 하네요. 과일의 신선함과 산도를 더 높이려고 수확시기를 좀 앞당기고 지역별로 수확 시기를 다르게 한다든지, 전에는 새오크를 40% 사용했다면 10%로 줄이는 등 조금씩 포도재배와 양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꿔가며 1865를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프랑스 브루고뉴나 보르도는 포도가 완숙할때까지 마냥 기다릴수는 없어요. 그러다가 우박이나 서리피해를 당하면 모든 거을 잃을 수 있기에 수확시기에 무척 민감하죠. 반면 칠레는 천혜의 자연환경때문에 느긋하게 포도가 다 익기를 기다려도 큰 문제가 없었기에 그동안 과숙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죠. 하지만 최근 10년동안 지구온난화로 칠레 기후도 많이 달라졌어요. 따라서 무조건 기다리면 안됩니다. 품종에 따라 최적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수확시기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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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 수석 와인메이커 마티스 크루잗


양조과정에서 색과 탄닌을 우려내기 위해 탱크를 휘젓는 펌핑오버도 줄였습니다. “펌핑오버를 많이 하면 탄닌이 너무 많이 추출되요. 볼륨감이 아주 강하고 진한 올드한 칠레 와인 스타일이 나오게 된답니다. 1865는 소비자가가 4만원대이고 세일하면 3만원대에요. 소비자가 이 정도 가격의 와인을 살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롤로처럼 병입한뒤에도 오랫동안 숙성시켜야 맛이 활짝 열리는 와인이 아니라 구입해서 바로 오픈해서 마셔도 온전한 맛과 향을 낼 수 있는 와인 아닐까요”.

오크 사용도 최대한 절제한다는군요. 새 오크는 20∼25%만 사용하며 보통 한차례 사용한 오크로 1년정도 숙성합니다. “2∼3년안에 마시는 와인인데도 장기숙성해서 마시는 고가의 프리미엄 풀바디 와인처럼 만들려고 많은 칠레 생산자들이 미친듯이 오크를 사용해요. 프랑스 보르도 카베르네 소비뇽은 새오크 배럴에서 숙성해도 균형잡힌 바닐라 향을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칠레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새오크에서 너무 오래 숙성하면 바닐라와 오크향이 매우 튀게됩니다. 오크 사용을 절제해야하는 이유죠. 반면 최고 프리미엄 와인인 알타이르는 오래 숙성시켜 마시는 와인이어서 새오크를 100% 사용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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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냐 산 페드로 와인 생산지


칠레는 보통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카르미네르로 만든 레드와인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오비오, 이타타, 레이다, 리마리, 옐키 코스트 등 선선한 기후를 지닌 생산지들이 개척되면서 피노누아와 화이트 품종인 샤도네이, 소비뇽블랑도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칠레에는 브루고뉴처럼 위도 38∼40도에 걸쳐 있고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지녀 뛰어난 샤도네이를 생산할 수 있는 좋은 토양들이 많아요. 1865 샤도네이는 최북단인 옐키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드는데 사막지역이고 건조한 날씨지만 바다까지 평원으로 연결돼 있어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열기를 식혀주기에 산도가 좋은 샤도네이가 생산된답니다”.

와인메이커로서 만들고 싶은 최고의 와인은 뭘까요. “죽을때 마실 딱 하나의 와인을 선택한다면 화이트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 마을단위 와인 뫼르소, 레드와인은 이탈리아 끼안티 지방의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랍니다”. 뫼르소와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처럼 우아하고 밸런스가 뛰어나면서 깊고 그윽한 향이 우러나는 와인. 비냐 산 페드로에서 그런 와인을 꼭 만들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담겨있는 듯 하네요.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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