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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이대에서 희귀새 수십마리 죽는다…구조 나선 직원·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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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화여대 EEC 건물에 갇혔다가 구조된 지발귀개개비. 사진 배윤혁 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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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배윤혁(25)씨는 ECC(Ewha Campus Complex) 건물 근처에서 참새 사체를 두 구 발견했다.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뒤였다. 배씨는 사체를 수습하고 이중 상태가 좋은 것을 교내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대 자연사박물관은 이렇게 죽는 새들을 박제해 소장하고 있다.

2년 전에도 배씨는 ECC 건물에 갇힌 새를 구조했다. 희귀 조류로 분류되는 ‘쥐발귀개개비’였다. 새는 유리창에 부딪혀 머리를 다친 듯 날지 못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탈진으로 사망할 수도 있었다. 배씨의 구조로 새는 기력을 회복해 근처 산에 방사됐다.

배씨는 “죽은 새들을 부패되기 전 빠르게 발견해 박제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소리소문없이 부패돼 흔적만 남는 경우도 많다”며 “몇몇 새들이 표본으로서 가치를 갖지만 그게 최선은 아니다. 하루빨리 새들이 죽지 않게 ECC 유리 건물에 조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십 마리 '통유리'에 죽어



이대 교직원과 학생들이 ‘새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이대는 북한산 자락과 이어져 있어 우리나라를 지나가는 철새들이 종종 머무르는 장소다. 외국에서만 서식하는 희귀한 새들도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이런 새들이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일이 많다. 이대의 대표적인 건물로 알려진 ECC에서 특히 자주 발생한다. 새가 건물의 통유리창을 벽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진하는 탓이다. 건물 내부에 조성된 지하 정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도 더러 있다. 이대 측에 따르면 이렇게 죽어서 박물관에 박제되는 새가 해마다 5~6마리 정도 된다. 실제로 죽는 새의 숫자는 최소 수십 마리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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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EEC 건물내 조성된 내부 정원. 사선비행을 하는 새들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거나 유리창에 부딪혀 죽기도 한다. 사진 이화여대 배윤혁 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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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붙여도 효과 미미



철새 이동시기가 되면서 참변을 당하는 새의 숫자는 늘어날 예정이다. 생물학 전문가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포함한 연구진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해결은 쉽지 않다. 흔히 알려진 유리창에 맹금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은 효과가 거의 없다고 한다. 최근 새들이 ‘높이 5㎝×폭 10㎝’보다 좁은 틈으로는 비행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스티커ㆍ구조물 설치 등이 도입되는 정도다.

배씨 사례처럼 위험에 처한 새를 빠르게 구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몇 년 전 이대 학생들 사이에서는 ‘새 구조’ 서명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학교 측에서는 교내에 옹달샘을 조성해서 새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죽은 새를 박제해 연구 표본으로 쓰거나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자연사박물관 관장인 장이권 이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박제용으로 들어오는 새들을 보면 붉은허리개개비, 흰눈썹 지빠귀 등 우리나라에서 서식하지 않아 굉장히 희귀한 종들이 많은데 안타깝다”며 “교내에서 긴급히 구조가 필요한 새를 발견할 시 자연사박물관 쪽에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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