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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5 (토)

[한겨레 프리즘] 황교안의 1인 시위 / 김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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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미나
정치팀 기자


몇해 전 겨울, 서울 명동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해 달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가장 어려운 게 시민들과 눈을 맞추는 일이었다. 오가는 인파 속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누군가의 관심을 얻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구나.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1인 시위를 하는 이는 누구나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을 갖고 거리로 나선다. 국회와 청와대 앞으로, 광화문과 서울역 광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들은 생각한다. 혹여나 나라님이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을까? 신문에 대문짝만한 사진이 실려 여론이 움직이진 않을까?

최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1인 시위에선 이런 간절함과 절박함을 찾기 어려웠다. 그가 누군가.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야권의 거물로, 책임당원만 34만명인 한국당을 이끌고 있다. 당 출입기자 수백명과 보수 유튜버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대중에게 전한다. 당대표 회의실에서 마이크를 잡고 정부 정책을 비판할 때면, 거의 모든 언론이 주목한다. 황 대표는 보수 유권자층이 선택한, 대한민국에서 정부·여당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출력이 높은 스피커다.

지난 14일 오후 6시 서울역 2번 출입구. 황 대표가 귀경객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12일에 이어 두번째 ‘서울역 1인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번에도 “조국 임명 철회하라”고 적힌 대형 팻말을 들었다. 황 대표의 1인 시위는 특별했다. 경찰은 부채꼴로 황 대표를 둘러쌌다. 취재진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지지자 100여명은 “황교안”을 연호했다. 박수 소리도 터져 나왔다. 한 시민은 황 대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자신과 황 대표 얼굴을 앵글에 함께 담으려고 팔을 길게 내뻗었다.

갑자기 한국당 최고위원을 지낸 류여해씨가 근처에서 1인 시위를 하다 황 대표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무효라고 외쳐달라. 청와대로 가달라”고 다짜고짜 매달렸다. 황 대표의 첫번째 서울역 1인 시위 때도 군복 차림의 한 시민이 비슷한 장면을 연출한 적이 있다.

황 대표는 말을 아낀 채 묵묵히 시민들을 바라봤다. 또 다른 시민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구하자 “다 같이 힘을 합해야 한다”는 교과서 같은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국민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줬다. 그렇지만 ‘조국 임명은 안 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공감이 컸다”고 했다.

황 대표의 ‘1인 시위’를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1인 시위는 레드카펫이 깔린 광화문 장외집회나 18일간 전국 곳곳에서 이어진 민생대장정 때 보여준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가는 곳마다 지지자에게 둘러싸였다. 정확히 야권의 ‘최대 유력 대선주자’의 모습이었다. 황 대표는 1인 시위에 나서기 전 페이스북에 “조국 사태는 야당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국민께서 야당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통렬하게 깨우쳐 줬다. 지금까지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도 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한 부분을 인용했다. “생명과 자유는 날마다 얻어지는 게 아니라, 날마다 쟁취해야 얻어지는 것이다.” 그날 “황교안 대통령”을 연호하는 지지자들 사이에서 황 대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서울역, 황 대표가 든 시위용 팻말 아랫부분엔 ‘대한민국 국민 황교안’이란 글자가 선명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1인 시위에 나섰다는 뜻일 것이다.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던 대통령, ‘보통사람, 믿어달라’던 대통령이 떠올랐다. 이날 황 대표가 시위현장인 2번 출입구 앞에 나타나기 직전, 출입구 주변 노숙인들이 깔고 있던 종이 박스를 들고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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