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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유레카] 욱일기와 하켄크로이츠 / 안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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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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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 비 앙 로즈>로 200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마리옹 코티야르가 지난 7월 한국 팬으로부터 한 통의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받았다. 코티야르가 파리의 한 행사에 욱일기 문양이 들어간 모자를 쓰고 참석한 모습을 인터넷에서 본 한국 팬이 그 문양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사용한 욱일기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모자를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코티야르의 매니저는 “그녀와 나는 그 의미를 몰랐다. 유럽에는 이런 문양이 들어간 옷들이 많다. 알려줘서 고맙다. 모자는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이라는 답신을 보내 왔다.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는 나치 독일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깃발과 같은 전범기다. 하지만 유럽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일본이 전범국이고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른다.

독일어로 갈고리를 뜻하는 하켄과 십자가를 뜻하는 크로이츠가 합쳐진 하켄크로이츠는 고대 게르만 문화에서 유래했다. 행운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 1933년 독일의 국기로 지정됐고 의미도 아리안 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로 변질됐다. 히틀러는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앞세워 유럽 국가들을 침략했다. 1945년 독일이 패전한 뒤 유럽에선 하켄크로이츠 사용을 금지했다. 특히 독일은 이른바 ‘반나치법’으로 불리는 형법 제86조에서 하켄크로이츠가 그려진 깃발, 배지, 유니폼 등을 사용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반면 일본은 정반대였다. 패전 뒤 일본군이 해체되면서 욱일기도 한때 사라졌으나 1954년 자위대가 만들어지면서 욱일기도 살아났다. 일본 정부는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역사적 사실은 감춘 채 일본의 전통 문양이라고 홍보해 왔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 5월 홈페이지에 올린 영문판 홍보물에서 “욱일기 디자인은 오랜 세월 풍어 기원, 출산 축하, 지역 축제 등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고 주장했다.

독일과 일본의 상반된 태도 탓에 국제사회에서 하켄크로이츠는 금기시되고 있지만 욱일기는 한국과 중국 등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의 피해를 입은 나라들 말고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시모토 세이코 일본 올림픽상(장관)이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욱일기는 정치적 의미에서 결코 선전물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의 ‘도쿄올림픽 경기장 내 욱일기 반입 금지’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대회 기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개별적으로 판단해 대응하겠다”며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욱일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올림픽 공식 후원사 중 일본 기업이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것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 증진과 인류애 실천이라는 올림픽 정신에 반하는 일이다.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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