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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자유시간 선언한 아내, '독박 육아' 하고 반성문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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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맞아 하루 '자유시간' 선언한 아내

'아빠 독박육아' 해보니···반성문 각

엄마의 노동은 명함도 못내미는 시대

신간 를 읽고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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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생일을 맞은 아내가 ‘자유시간’을 선언했다. 최신 영화도 보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아침 차리는 일부터 설거지, 청소, 딸 밥 챙겨 먹이는 일과 목욕 등 임무가 주어졌다. 딸이 동화책 읽어달라고 아빠를 찾을 때만 해도 뿌듯함이 샘솟았지만 낮잠 자고 일어난 딸은 엄마를 찾으며 30분을 울더랬다. ‘밥 먹을까’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맛 없는지 숟가락을 피하기만 한다. 목욕까지 끝낸 저녁이 되니 머리가 다 욱신거렸다.

돌이켜보면 그런 날이 아빠에게는 어쩌다 한 번 있는 날이지만 아내에게는 일상이었다. 생각해보니 육아를 맡을 때마다 내 몸이 ‘힘듦’을 느끼면서도 정작 아내에겐 ‘어디 아픈 덴 없는지’ 한 번을 물은 적이 없었다. 아내는 자유시간 도중에도 ‘애기 밥은 잘 챙겨먹였는지’ 류의 카톡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그렇게 믿음을 못줬던가 싶다가도 자유시간조차 편하게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유모차를 끌고 카페에 가면 ‘라떼파파’라고 칭송받지만 엄마가 그렇게 하면 한가롭게 커피‘나’ 마시는 아줌마 취급받는 세상, 하나만 해도 열 배 칭찬받는 남편이 가끔은 부러웠노라고 신간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푸른향기) 저자는 솔직하게 말한다. 쏟아지는 육아책과 각종 부모 강연은 왜 다 하나같이 ‘아기를 위해 엄마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만 말하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 책에는 “육아는 ‘단짠단짠’이 아니라 ‘단짜라짜라짠짠’이다”, “우리는 더 많은 멘붕을 겪게 됩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합시다”라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임신·출산·육아의 현실이 담겨있다. 또한 “아이를 사랑하지만 때로 미워하기도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한 엄마가 되지 못했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따뜻한 위안과 조언도 많다. 이 책은 그동안 아이와 육아로 가족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엄마’의 관점에서 다시 쓴 본격 ‘엄마를 위한 육아책’이다. 실제 육아맘인 네 명의 에디터가 만드는 ‘마더티브(마더 + 내러티브)’에 연재된 글들을 엮어 만든 책으로, 카카오 브런치에서만 200만 회 이상 조회됐을 정도로 반향이 컸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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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누가 돌봐주어야 할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의 대답은 쉽게 하기 어려웠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엄마인 자신 스스로 돌봐야 한다면 너무 슬픈 현실이다. 아빠의 ‘반반 육아’ 참여가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아빠 혼자의 힘 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빠의 의지와는 별개로 지난해 통계청 일·가정양립지표에 따르면 0~7세 자녀를 둔 임금근로자 가운데 남편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1.6%에 불과했다. 운이 아닌 시스템을 갖춘 보육 서비스도 필요할 것이고, ‘맘충’이나 ‘노키즈존’ 같은 불편한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도 바뀌어야 한다. 아이 하나 낳고 키우기도 버거운 세상, 이제는 엄마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엄마를 위한 육아책이라지만 아빠들도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엄마들이 평소 어떤 부분에서 아빠와 갈등을 겪는지, 남편의 어떤 도움을 바라는지 속 이야기까지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하지만, 이 책의 등장이 그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육아 만큼이나 아내에게 무신경했다고 깨달았던 그날 밤, 아내의 늦은 생일 편지에 반성문을 써내려갔다. “자유시간 많이 못챙겨줘서 미안했어요. 정해인 나오는 영화를 보고도 제 시간에 돌아와줘서 고마워요.”

/강신우기자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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