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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정동칼럼]조국 장관의 ‘승리 확률 기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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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유난히 큰 추석이었다. 밝은 달과 맛난 음식들도 좋지만, 오랜만에 가족·친지를 만나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추석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명절 때 해선 안되는 이야기도 있다. ‘취준생’에게 취업은 했냐고 물어선 안된다. 언제 결혼할 생각이냐, 언제 애 낳느냐, 이런 이야기도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또 하나 불문율은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얼굴을 붉히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치 이야기가 아예 안 나올 수는 없다. 사람들 눈치 보면서 적당한 선까지만 이야기를 한다. 정치인들이 명절을 여론 추이의 변곡점으로 보곤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올 추석은 특히나 민감했을 듯하다. 장관과 검찰총장, 야당 대표 이름이 적당한 비율로 섞여 호명되었을 것이다.

경향신문

소위 ‘조국 정국’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여론조사 결과도 지겹게 기사화될 것이다.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사람이 과반수라더니 차기 대권후보 3등이라는 결과도 나왔다. 하여 ‘해설’과 ‘분석’이 분분한 작금의 어지러운 정치상황에 잡문 하나를 보태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 것 같기에 새삼 묻는다. 여야 어느 쪽이건, 자기네 지지도가 높으면 승리이고 반대 여론이 높으면 패배인가? 누가 무엇을 근거로 승패를 선언하는가? 의학논문 제1저자와 표창장과 봉사활동과 사모펀드 이야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가 분명해지는 건가? 조국 장관 개인의 승패인가, 여당의 승패인가, 정권의 승패인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이기려 하는가?

야구팬들이라면 익숙할 ‘승리 확률 기여도’라는 통계치가 있다. ‘WPA(Win Probability Added)’라 불리는 이 숫자는 선수의 특정 플레이가 팀의 승리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진다. 같은 홈런이라도 ‘영양가’에 따라 WPA는 달라진다. 자기 팀이 10-0으로 이기고 있는 게임의 9회초에 때린 홈런과 동점 경기 9회말의 굿바이 홈런은 그 가치가 다르다. 우리 팀의 승리 가능성이 이미 99%였는데 홈런으로 99.5%가 됐다면 이 선수의 WPA는 0.005밖에 안되지만, 홈런 덕에 승리 가능성이 40%에서 100%로 바뀌었다면 이 홈런타자의 WPA는 0.6이나 된다. 반면 결정적인 기회에서 병살타를 쳐 팀의 승리 가능성이 60%에서 40%로 떨어졌다면 이 선수의 WPA는 마이너스0.2가 된다. 이런 상황들이 축적되면서 특정 선수의 승리 확률 기여도는 차곡차곡 쌓여 숫자로 표시된다. 1년 동안 쌓인 WPA가 5.0이 넘으면 최고 수준의 선수로 간주된다.

뜬금없이 야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정치인의 발언이나 행동도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정도로 측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의 승패 기준이 정권 획득이라면, 대통령 선거의 승리 확률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WPA가 부여될 것이다. 사소한 말실수는 마이너스0.01 정도 될 수 있고, 좋은 정책이나 법안을 만들면 플러스0.1을 받을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WPA가 마이너스2인 정치인도 있을 테고 플러스3쯤 되는 정치인도 있을 것이다. 조국 교수의 법무부 장관 임명이라는 플레이의 WPA는 양수인가, 음수인가? 절대값은 어느 정도 되는가? 누군가는 지금 이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부질없지 않은가. 정치의 목표가 선거 승리라면, 승리 이후의 목표는 그저 다음 선거의 승리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 WPA의 ‘W’는 선거의 승리를 의미해선 안된다. 평범한 시민들의 삶이 나아지고, 사회가 진보하고, 인권과 정의가 보장되는 방향의 변화가 ‘승리’여야 한다. 승리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면 ‘발전’ 정도로 해두자. ‘승리 확률 기여도’가 아닌 ‘발전 확률 기여도’를 따져보자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 장관 임명이라는 사건의 WPA는 양수(+)로 보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주었고,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를 강화시킨 사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전 확률 기여도는 장기간에 걸쳐 여러 사건들 점수가 축적되어 측정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병살타를 날린 선수가 굿바이 홈런을 쳐서 준수한 WPA를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임명 이후 조국 장관의 WPA는 양수가 될 수도 있고, 점수를 축적하다보면 플러스5.0을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한 문재인 대통령이나 조국 장관 본인이 ‘선거 승리’나 ‘검찰개혁’ 정도를 목표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 검찰개혁도 결국 더 큰 목표를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크고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오늘은 WPA를 몇 점이나 획득했는지, 혹은 잃었는지 매일 따져보길 바란다. 만루홈런이 아주 미미한 점수밖에 안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족을 달자면, 야당도 다르지 않다. 조국 장관 퇴진이나 대통령 탄핵을 ‘승리’로 여기는 한 진짜 WPA는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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