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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임정욱의 스타트업 세계] 국내 유니콘에 투자한 해외 자본, '먹튀' 아닌 '메이저리그 스카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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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9개 유니콘 스타트업 중 8개, 해외 자본 대규모 투자

美우버·中알리바바 등도 日소프트뱅크·사우디 돈으로 성장

해외 투자, 국내 스타트업을 글로벌 무대에 데뷔시키는 역할

기업 생태계 활력 위해 더 많은 유니콘·해외 자본 유치 절실

조선일보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한국의 '유니콘' 스타트업은 이제 9개다. 쿠팡, 크래프톤, 옐로모바일, 우아한 형제들, 비바리퍼블리카, L&P코스메틱, 위메프, 야놀자, 지피클럽 등이다. 위메프를 제외하고 이 회사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해 유니콘이 됐다는 점이다. 유니콘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기업 가치를 가진 스타트업을 뜻한다.

현재 10조원이 넘는 가치를 인정받은 쿠팡의 경우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3조5000억원을 투자했다. 우아한 형제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온 한국계 벤처캐피털인 알토스벤처스 외에 골드만삭스, 중국의 힐하우스캐피털 등이 투자했다. 유니콘 회사 중 위메프만 넥슨 등 국내 자본이 투자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해외 투자자들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지난 9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벤처 투자 관련 공청회에 진술자로 참석해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받았다. 몇몇 의원들이 "대부분의 한국 유니콘에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했다는데 문제 아니냐"고 했다. 이런 좋은 회사에 왜 한국 투자자들은 투자하지 않느냐는 얘기 같다. "국부 유출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해외 자본이 한국의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해 큰 수익을 올린 뒤 소위 '먹튀'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과연 그럴까. 해외 자본의 국내 스타트업 투자의 순기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첫째 유니콘 스타트업들은 해외 자본이 투자해줬기 때문에 유니콘이 됐다. 해외 투자자 없이는 유니콘으로 도약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보통 수십억원 단위의 투자를 하는 한국의 벤처캐피털은 몇백억원에서 1000억원 단위로 이뤄지는 유니콘 스타트업 단계의 투자에 참여하기 어렵다. 한국의 벤처캐피털 규모가 더 커져야 한다.

둘째 해외 자금이 수혈됐기 때문에 스타트업들이 더 공격적으로 성장을 꾀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사무실과 공장을 늘리고 마케팅을 강화한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작은 스타트업이 대기업에 맞서서 싸울 수 있는 것도 해외 투자자가 만들어준 자금력 때문이다.

셋째 해외 자본 덕분에 기업 가치가 올라 창업자와 초기에 투자한 한국 벤처 투자자들이 돈을 벌 수 있었다. 해외 자본이 나중에 들어오면서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들의 지분을 사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초기에 실패 위험을 감내하고 도전한 대가를 보상받는 셈이다. 자금 여유가 생긴 창업자나 투자자들은 다시 좋은 초기 스타트업을 찾아서 재투자에 나서게 된다. 선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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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할 측면도 있다. 해외 투자자도 나름 큰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투자한 회사가 기대한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면 투자금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투자한 회사가 상장하거나 매각돼서 투자금을 회수하기 전에는 그 돈을 빼가지도 못한다. 그리고 어차피 이런 매력적인 회사의 주식을 사는 투자자는 외국인들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이 지금도 50%가 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의 유니콘도 성장 스토리는 마찬가지다. 지난 5월 상장한 우버는 200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가 약 80조원 몸값의 유니콘이 되는 데는 4조원을 투자한 사우디아라비아와 8조원을 투자한 일본 소프트뱅크가 큰 역할을 했다. 몸값이 올라가면서 우버 창업자들과 임직원들, 우버에 일찍 투자한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하지만 상장 이후 주가가 주저앉으면서 마지막으로 거액을 투자한 사우디와 소프트뱅크는 큰 수익을 거두지 못해 울상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도 해외 자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1999년 알리바바에 약 2000만달러를 투자했다. 그 지분 가치는 거의 150조원으로 불어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내스퍼스는 지난 2001년 텐센트에 3200만달러를 투자했다. 내스퍼스의 텐센트 지분 가치도 16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중국에서 이런 투자가 해외 자본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여론을 들어본 일이 없다. 해외 투자자가 투자한 돈은 초기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고, 지금 늘어난 기업 가치도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두 회사의 주식을 사준 덕분이기 때문이다. 국내외 스타트업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는 베테랑 VC인 LB인베스트먼트 박기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우리 스타트업을 발굴해 메이저리그에 데뷔시켜주는 스카우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들 덕분에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 알려지고 몸값이 높아지게 됩니다. 해외 시장과 한국 스타트업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현재 한국 상장 기업 중 1조원 클럽은 170여개사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일본의 시총 1000억엔(약 1조1000억원) 이상 상장 기업은 750여개사로 4배가 넘는다. 한국 기업 생태계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 더 많은 새로운 유니콘 기업이 필요하다.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매력적인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청신호다.

해외 자본이 한국 기업에 투자해 좋은 결과를 얻고 또 유망 스타트업이 계속 한국에서 나온다면 벌어간 돈보다 더 많이 계속 투자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국부 유출'이라는 단기적 시각으로 문을 닫아 버린다면 우리 스타트업들이 유니콘 회사가 될 기회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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