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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규제 OUT] (26) 해묵은 규제에 발목 잡힌 숙박공유업-빈집 고쳐 공유민박? 실거주자 아니면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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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농어촌정비법 규제로 스타트업 다자요의 공유숙박 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사진은 다자요가 운영해온 제주도 공유숙박시설. <다자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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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마다 빈집 활용 민박 사업을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는데 정작 법규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사업을 접어야 할지 걱정이네요.”

공유민박 스타트업 ‘다자요’를 운영해온 남성준 대표의 하소연이다.

한때 전국 각지 공유민박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어온 그가 분통을 터뜨린 사연은 이렇다.

2015년 다자요를 창업한 남 대표는 제주도에서 공유민박 사업을 해왔다. 농어촌 지역 빈집을 장기 임대한 뒤 IT 플랫폼을 활용해 숙박시설을 공유하는 일종의 숙박공유 사업이다. 남 대표는 1억~2억원가량 들여 빈집을 리모델링한 뒤 10년간 무상임차해 민박집을 운영해왔다. 리모델링 비용을 집주인에게 요구하지 않는 대신 중개수수료 명목으로 10년간 숙박료를 받는다.

무상임차 기간이 끝나면 집주인에게 돌려주는 만큼 주인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 에어비앤비가 집주인과 숙박객을 연결만 해주는 중개 플랫폼인 데 비해 다자요는 주택 리모델링, 운영까지 도맡는다. 숙박시설 리모델링 자금은 크라우드펀딩 업체 와디즈를 통해 충당했다.

다행히 초기 반응은 괜찮았다. 농어촌 빈집을 활용해 민박 사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제주특별자치도를 비롯해 경남, 전남, 경기도 등 여러 지자체에서 러브콜을 보냈다. 시골 빈집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신규 숙박시설을 새로 짓지 않으면서도 지역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호텔, 리조트를 건설할 때 문제가 되는 환경 파괴 논란에서도 자유롭다. 장점이 많다 보니 지자체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소유한 빈집을 활용해달라는 집주인 요청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공유민박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범법자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실거주자만 농어촌 민박 사업자로 등록할 수 있는 농어촌정비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불법 숙박업 혐의로 남 대표는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농어촌정비법 뭐기에

▷실거주자만 연면적 230㎡ 미만 민박 가능

다자요의 공유민박 사업을 가로막은 것은 1993년 제정된 농어촌정비법 규정이다. 농어촌정비법에 따르면 농어촌민박 사업은 농어촌 주민이 거주하는 단독주택을 이용해 소득을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공중위생법을 적용받는 호텔, 여관 등 숙박업소와 달리 민박업은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농어촌 실거주자에 한해 연면적 230㎡ 미만 1개 동만 운영할 수 있다. 실거주자가 아닌 외지인은 농어촌민박업이 금지돼 있다는 의미다. 남 대표는 “30여년 전 만들어진 농어촌정비법 탓에 숙박공유 사업이 불법 숙박업이 됐다. 법인이 빈집을 활용해 농어촌민박업을 할 수 있도록 한 법령 자체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토로했다.

남 대표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함께 농어촌민박업 요건을 ‘거주’에서 ‘소유’로 수정하는 내용의 농어촌정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는 “농어촌 소재 단독주택의 경우 소유자는 있지만 거주자가 없는 빈집인 경우가 많다. 법개정이 이뤄지면 농어촌 빈집 소유자의 자산가치 상승과 농어촌 산업 진흥, 혁신벤처 성장 등이 기대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새로운 제품,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인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해 임시허가를 받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무분별한 숙박업소 난립을 막아야 하는 데다 안전 문제를 위해서라도 실거주 요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신재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산업과장은 “실거주자 요건이 없을 경우 휴가철에만 반짝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 있다. 관리 없이 방치되다 보면 안전사고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숙박공유 업계는 농어촌 빈집을 활성화하는 방안일 뿐 안전 문제 우려는 ‘기우’라는 입장이다. 남성준 대표는 “숙박업소가 난립하는 것이 아니라 애물단지 빈집을 활성화하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 집주인이 실거주한다고 안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 위탁업체가 첨단 IT 시스템을 통해 운영하는 만큼 얼마든지 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日 규제 풀어 숙박공유 활성화하는데

▷‘한국판 에어비앤비’ 키우려면 규제 완화해야

숙박업계에서는 공유숙박업을 가로막을 경우 에어비앤비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점차 국내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우려한다. 실거주자에게만 민박업을 허용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중소도시 및 농어촌 빈집재생을 통한 관광숙박 활성화 입법과제 토론회’에서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빈집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면 얼마든지 지방 관광숙박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은 “국내 기업은 없고 성공한 외국 플랫폼이 들어와 시장을 장악할 것이다. 새로운 근거 규정을 통해 빈집 숙박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논의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공유숙박을 관광 콘텐츠로 적극 활용해왔다. ‘주택숙박사업법’, 이른바 신민박법을 통해 공유숙박업을 양성화했다. 신민박법에 따르면 민박업을 희망하는 사람은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연 180일 이하로 내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 다만 위생관리와 운영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부 허가를 받은 전문 민박관리 업체, 즉 주택숙박 관리업자를 둬야 한다. 위탁업자에게 주택관리를 맡길 수 있고 주인이 살지 않는 집도 얼마든지 민박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일본이 민박 규제를 푼 것은 저출산 고령화, 대도시 인구 이탈 현상으로 지방 빈집이 사회 문제로 등장한 때문이다. 일본은 지자체별로 빈집 유통을 관리하는 ‘빈집은행’을 운영 중이다. 신민박법을 통해 주택을 민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빈집 문제 해결책의 일환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 등 굵직한 행사를 앞두고 관광 수요를 끌어오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 덕분에 공유숙박 서비스 업체가 늘면서 관련 산업도 성장세다. 2016년 설립된 숙박공유 스타트업 H20호스피탈리티는 일본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 3000여개 객실을 위탁관리한다. 집주인으로부터 빈집 관리·운영을 위탁받은 뒤 이를 리모델링해 관광객에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해 4분기 5억원 수준에 그쳤던 매출이 올 2분기 25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100억원대 매출을 눈앞에 뒀다.

전문가들은 농어촌민박법이 제정된 1990년대와 현재 상황이 다른 만큼 농어촌민박법 규정을 하루빨리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제정 당시만 해도 공유민박 규정은 농어촌 거주자 부수입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지금은 고령화, 도시 이주 등으로 빈집이 골칫덩이가 된 상황이라 이를 활용할 해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국토정보공사에 따르면 전국 빈집은 107만가구에 달하고 2050년에는 300만가구로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 못지않게 전국 지자체마다 빈집 활용 방안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숙박 규제를 과감히 푼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해 우리도 지방 관광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는 이유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5호 (2019.09.18~2019.09.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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