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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古典, 새 번역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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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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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분석한 루스 베니딕트의 명저 '국화와 칼'이 번역본 두 개로 최근 나란히 출간됐다. 1945년에 출간된 이 고전이 국내에 처음 번역된 건 1974년. 일본에 관한 연구가 거의 전무했던 1970년대 고(故) 김윤식 서울대 국문과 교수와 오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가 일본에서 만나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저술된 '국화와 칼'의 번역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을유문화사에서 처음으로 출간됐다. 개정을 거듭하던 이 책의 여섯 번째 개정판이 8월 말 출간됐다. 저명한 저술가이자 아시아 연구가 이안 부루마가 쓴 서문을 재수록했으며, 고 이광규 서울대 명예교수의 해설을 실었다.

9월 연암서가에서 출간한 '국화와 칼'은 전문번역가 이종인의 번역을 거쳤다. 책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과 인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 베니딕트가 니체와 프로이트에게서 받은 영향에 주목한 해설을 첨부한 점이 특색이다. 2017년 김승호가 번역해 출간된 책만드는집의 판본과 박규태 번역으로 출간된 문예출판사의 판본까지 번역본 4종을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셈이다. 고전이 새로운 번역으로 돌아오고 있다. '국화와 칼'에 이어 '종의 기원' '모비딕' 등이 최근 국내에서 명망 있는 번역가들의 번역으로 재출간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종의 기원'은 국내에 한길사·동서문화사 등에서 번역본 10여 종을 출간한 고전 중의 고전이다. 여기에 최근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6판까지 출간된 초판을 다시 번역해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하면서 화제가 됐다. 1859년부터 1872년까지 여섯 번 개정됐는데, 국내 역서는 대부분 6판을 다뤘다.

장 교수는 "저자의 독창성과 과감성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평가받는 초판을 번역 텍스트로 삼기로 했다. 번역서가 가장 낮은 허들이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모비딕'도 올해 허먼 멜빌 탄생 200주년을 맞아 부활했다. 8월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시인 황유원의 번역본이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미국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모비딕'은 난해한 언어와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번역가에게 악몽 같은 책으로 유명하다. '24만개 단어로 이뤄진, 고래에 대한 방대하고도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전서'라는 수식이 붙을 정도다. 2010년 국내 최초로 스타 번역가 김석희가 완역하며 화제를 모았다.

황유원의 완역본은 영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부터 자신의 색을 입혔다. '이슈마엘' '이스마엘'로 불리던 주인공 이름을 현지인 발음을 참고해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고 옮겼다.

고전의 재번역이 늘어나는 건 이미 기존 번역의 미진함을 채우려는 이유도 있지만,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 비용이 들지 않고 꾸준한 판매량을 노릴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한 출판사 대표는 "문학 출판사 대부분은 검증된 고전을 직접 출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고, 번역에 공을 들여 책을 출간하면 오랜 기간 꾸준하게 책이 나간다"면서 "'국화와 칼'은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판매량이 크게 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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