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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학교의 안과 밖]교실에 필요한 ‘따뜻한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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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가르치던 학생 중에 은서(가명)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의 옆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그래도 수업시간에는 매번 학습지를 다 채우고 검사를 받으러 나왔다. 그런 은서가 어느 날 수업 내내 엎드려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은서에게 가서 물었다. “은서야, 왜 오늘은 검사받으러 안 나와?” “어, 선생님 알고 계셨네요.” “그럼~ 너 매시간 필기하고 검사받으러 나왔잖아.” “저 사실은 다음주에 전학 가요. 그런데 아무도 몰라요.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은서와 새로 전학 갈 학교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다.

경향신문

그리고 며칠 뒤 복도에서 다시 은서를 만났다. “은서야, 머리 스타일 바뀌었네?” “어, 선생님 알아보시네요?” “당연하지. 전에는 곱슬곱슬했잖아.” “선생님, 제 머리 곱슬곱슬한 것도 알았어요?” 은서는 내가 말을 걸 때마다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냐고 되물었다. 은서는 자신이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묻고 또 물으면서 스스로 살아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듯했고, 나는 그런 은서를 볼 때마다 그가 달라진 점을 확인해주면서 은서를 응원했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들은 ‘사우보나(Sawubona)’라는 인사를 나눈다. 덤불 속에서 부족의 동료들이 보이면 “사우보나!” 하고 소리치는데, 이것은 아프리카 줄루어로 ‘네가 보여’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야보 사우보나!” 하고 외치며 “나도 네가 보여”라고 화답해준다. 나비족의 인사에 담긴 서로에 대한 다가감과 환대는 학교에서 안전하고 풍성한 배움의 공간을 만들어갈 때에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너의 지금 모습 그대로도 괜찮으며 너를 환영한다는 것을 학생들이 느끼게 될 때, 그들은 비로소 자신을 믿고 배움의 공간에 참여하게 된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은서처럼 ‘나 여기 있어!’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그들 옆에서 ‘네가 보여!’라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너를 본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데 익숙해져 있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상대방을 비난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특히 교사나 부모들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예의 바르며 공손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학생들의 존재에 다가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교육이란 학생들의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며 누구나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을 때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흉악한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변화와 성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교육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럼 그렇지. 정말 달라지지 않는군.’ 무의식 중에 이런 판단을 갖고 있는 한, 대부분의 교육적 시도는 실패로 끝나게 되고 오히려 서로에게 미움과 상처만 남게 된다.

타인의 존재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자신의 기대에 맞추려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고, 실제로도 늘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조금씩 자신과 타인의 존재를 허용하게 되고 서로의 작은 변화에도 주목하게 된다. 자신들의 작은 변화와 성취를 발견하고 기뻐해주는 따뜻한 시선을 경험하게 되면 학생들은 더 잘해보고자 하는 자발성과 책임을 갖게 된다. 오늘 우리 자신과 아이들에게 따뜻한 환대의 인사를 나누어보자. “사우보나, 네가 보여!”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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