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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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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味적인 시장](18)바다가 허락한 옹골찬 맛…1년에 딱 세 번,진짜 지갑 닫을 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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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진군 직거래 장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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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바다에는 중구와 옹진군에 속한 섬 100여개가 점점이 떠 있다. 강화도, 석모도, 교동도, 선재도, 영흥도, 영종도, 무의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차로 가본 섬이다. 배로 가본 섬도 헤아려보니 꽤 된다. 장봉도, 선갑도, 문갑도, 자월도, 소이작도, 승봉도, 사승봉도, 소야도, 덕적도, 대청도, 백령도 등 대부분의 유인도는 가본 듯싶다.

섬마다 풍광이 다르듯 생산하는 농산물이나 수산물도 각각 그 지역의 특성을 품고 있다. 백령도의 다시마와 까나리, 대청도의 성게와 홍어, 장봉도의 무산김, 영흥도의 포도, 덕적도의 표고버섯 등 섬마다 다니며 맛과 향을 즐기면 좋겠지만, 시간과 돈이 떠나는 발길을 잡는다.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옹진군 섬 농수산물 직거래장터가 일 년에 세 번 옹진군청 앞 파도광장에서 열린다.

■ ‘동네 맛’ 제각각인 섬 포도의 매력

올해는 9월9~10일에 첫 장터가 열렸다. 과거형이다. 대신 두 번째와 세 번째 장터가 남았다. 경험상으로 뒤로 갈수록 맛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전어조차도 맛있어진다는 차가운 가을바람에 단맛이 옹골차게 든다. 두 번째 장터는 9월25~26일(인천 서구 아시아드 주경기장) 열린다. 세 번째 장터는 10월 말로 예정돼 있다.

군청 앞 파도광장 농수산물 장터

‘꾸덕꾸덕’ 대청·소청도 말린 홍어

처음 본 국내 유일 2년산 다시마

차가운 바닷물서 자란 김은 ‘달달’


군청 앞마당에서 열리는 장터라 규모가 작다. 옹기종기 모인 파란색 천막 아래 섬의 맛이 듬뿍 든 식재료들이 가득하다. 9월 초의 주인공은 역시나 포도. 누군가의 고향 7월에는 청포도가 익었지만, 포도가 제대로 익는 7월은 음력 7월이다. 제법 큰 섬인 영흥도와 장봉도에서는 포도 농사를 많이 짓는다. 많이 짓는다고 해도 농지 대비 많이 짓는다는 의미지 충북 영동이나 경북 영주에 비교할 수 있는 양은 아니다. 포도 상자 앞에는 예외 없이 시식 포도가 있다. 하나씩 먹다 보면 ‘떼루아(동네 맛)’라는 단어가 왜 생겨났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이웃한 농가의 포도 맛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달고 시고, 달곰하고, 시고 달고… 비슷한 듯 각기 다른 맛 중에서 내게 맞는 포도 맛을 고를 수 있었다. 아마도 두 번째 장이 서면 포도 대신 섬고구마가 ‘동네 맛’을 대신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영흥도나 장봉도의 포도 맛은 낮은 바다 수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영흥도는 다리 하나 사이의 대부도보다 수확이 열흘 이상 늦다고 한다. 천천히 익는 대신 찬 바람에 단맛을 얻는다. 자연은 역시 공평하다.

경향신문

인천 옹진군에 속한 섬들에서 난 신선한 농수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직거래 장터는 일년에 세 번 옹진군청 앞 파도광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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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는 봤나, 2년산 다시마

장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말린 홍어다. 대청도와 소청도 바다는 우리나라에서 홍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이다. 말린 홍어는 찐 다음 양념해 먹는다. 말린 홍어 외에도 농어, 장대, 우럭, 놀래기, 망둥이 등 꾸덕꾸덕하게 건조한 생선이 많다. 반건조 생선은 어종에 상관없이 굽든, 찌든 차진 맛이 일품이다. 차가운 옹진 바다에서 난 해초가 있다. 가시리도 있지만, 일상에서 즐겨 먹는 미역, 다시마, 김은 특별한 맛을 자랑한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강화도 사이 작은 섬이 있다. 신도, 사도, 장봉도다. 인천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이지만 지주식 김을 오래전부터 양식하는 곳이다. 김은 지주식과 부유식 두 가지 방식으로 양식한다. 둘 사이의 장단점이 교차한다. 생산량이 좋으면 맛이 떨어지고, 맛이 좋으면 생산량이 떨어진다. 지주식은 생산량보다는 맛을 선택한 방식이다. 재래 김 포자를 양식장에 이식하고 차가운 바닷물과 북풍에 맡겨 놓으면 김은 저절로 자란다. 김이 나는 다른 지역보다 추운 지역이기에 장봉도 김은 달다.

미역과 다시마는 전남 완도나 부산 기장이 유명하다. 생산량도 많거니와 많이들 찾는다. 옹진군에서도 다시마와 미역이 난다. 배로 서너 시간 가는 백령도, 대(소)청도, 연평도가 주 생산지다.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의 바다(이하 백령도)에서는 품질 좋은 다시마가 난다. 백령도의 바다 수온은 16도 이하인 기간이 다른 지역보다 길다. 차가운 물에서 잘 자라는 다시마와 미역이 그 덕을 톡톡히 본다. 수온이 오르는 7월이면 다시마 끝이 물러지면서 다른 지역은 수확이 끝난다. 차가운 수온에 백령도의 다시마는 7월부터 제철이다. 7월에 수확하는 다시마 중에는 2년을 보낸 것도 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2년산 다시마가 나는 곳이 서해 최북단의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지역이다. 6년근 인삼과 4년근 인삼의 격이 다르듯 2년생 다시마와 6개월생 다시마의 격도 다르다.

■ 채소 찾기 힘든 성게비빔밥

백령도에서는 미역을 ‘지네발’이라 부른다. 백령도뿐만 아니라 거친 파도가 있는 갯바위에서 나는 미역을 통칭하기도 한다. 지네는 몸이 통통하고 수많은 다리는 가는 모양새다. 거친 파도에 미역은 지네 몸처럼 진화했다. 파도 거친 섬이나 동해안 갯바위에서 나는 것들을 보통 ‘돌미역’ 혹은 ‘쫄쫄이 미역’이라 한다. 지네발 미역과 같은 미역으로 이름만 달리 부를 뿐이다.

백령도, 대청도 바닷속은 해초가 숲을 이룬다. 해초를 먹고사는 성게에게는 낙원 같은 바다다. 대청도에서는 성게가 산란하기 전인 5월과 6월 사이에 성게 알을 채취한다. 급랭해놨다가 1년 내내 비빔밥이나 칼국수로 낸다. 성게 채취 시즌에는 싱싱한 성게를 맛볼 수 있다. 성게는 보통 명반(식품보존제)으로 전처리를 하고서 유통한다. 변색을 막고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함이다. 명반 처리한 성게 알은 끝에 쓴맛이 난다. 산지에서 먹는 성게 알은 처음엔 여리게 바다향을 풍기다가 깊은 바다맛으로 끝맺는다.

대청도 선착장에는 있을 것만 하나씩 있다. 미장원도 편의점도 중국집도 치킨집도 하나씩이다. 대청도에서 나는 수산물을 주로 내는 식당도 하나다. 성게비빔밥을 주문하니 바로 나왔다. 채소 사이에 놓인 성게의 양을 보니 성게의 성지인 대청도다웠다. 육지에서 들여와야 하는 채소보다는 성게가 더 싸서 그럴 듯싶다. 딱히 허기지지도 않았지만 비비기 무섭게 밥이 사라졌다. 밥이 사라지는 중간중간 추임새가 저절로 나왔다. “맛있다.” 바다식당(032-836-2476)

■ 까나리액젓으로 간 맞춘 냉면

장봉도 선착장에서 내려 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옹암해수욕장이 나온다. 해수욕장 주변에서 식당 몇 군데가 영업을 하고 있다. 인천의 섬에서 나는 것들이 비슷해도 저마다의 맛이 있다. 장봉도의 맛은 소라와 백합이다. 현지에서는 상합이라 하기도 한다. 갯벌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많이 나는 조개가 백합이다. 새만금이 막히기 전 부안, 김제의 바다에서 많이 났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장봉도는 임진강과 한강이 바다를 만나는 곳에 있다. 이곳에서 나는 조개들의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장봉도에서는 백합칼국수와 소라비빔밥이 유명하다. 소라비빔밥은 삶은 소라를 먹기 좋게 잘라 갖은 채소와 비벼 먹는다. 소라와 채소의 씹히는 맛이 예사 맛이 아니다. 같이 나오는 바지락국도 조개 맛있는 동네답게 시원하다. 영종도 삼목항에서 30분 간격으로 배가 다닌다. 차를 가져가도 좋고 천천히 걸어도 좋은 섬이다. 전주식당(032-752-6613)

백령도 ‘까나리액젓’ 냉면 맛보고

냉동 자연산 홍합·성게알 사들고

돌아가는 길, 손엔 꾸러미가 4개


백령도는 까나리가 유명하다. 까나리에 소금과 시간을 더하면 액젓이 된다. 액젓은 김치 담글 때 발효가 잘되라고 넣는다. 그것도 액젓이 가진 능력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다. 액젓의 강력한 능력 중 하나가 인공감미료(MSG)를 능가할 만한 감칠맛을 낸다는 것이다. 조미료는 여러 가지를 섞어 쓰면 하나를 쓰는 것보다 감칠맛이 좋아진다. 국물 낼 때 멸치만 쓰는 것보다는 표고버섯이나 다시마를 넣으면 더 맛이 좋아지는 이유다. 백령도에서는 고기 육수로 낸 냉면의 간을 까나리액젓으로 맞춘다. 까나리액젓으로 짠맛을 입맛에 맞게 맞추는 것도 있지만 몇 방울 까나리액젓에 냉면 그릇 속의 육수는 감칠맛으로 폭발한다. 요즘 평양냉면 한 그릇에 1만원이 훌쩍 넘지만, 백령도 냉면은 여전히 7000원이다. 백령도가 아니더라도 인천 시내에서 영업하는 지점이 세 군데가 있다. 친척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가격이나 내는 모양새가 백령도 본점과 같다. 다만 백령도 냉면 육수는 여린 생강 향이 매력 포인트다. 인천 시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탓에 뺐다고 한다. 사곶냉면(032-439-1645)

■ 흔한 음식을 특별하게 만드는 법

경기도 안산 시화방조제와 대부도를 지나면 옹진군 선재도와 영흥도가 나온다. 선재대교와 영흥대교로 연결되어 있어 오가는 길이 편하다. 영흥대교를 넘어 선착장 옆에는 내리 어촌계가 있다. 내리 어촌계에서 양식한 바지락은 맛이 좋아 일본에 수출할 정도다. 내리 어촌계에서는 수산물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 바로 앞에서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 어촌계에서 잡거나 양식한 재료만 사용한다. 바지락찜도 좋지만, 바지락칼국수가 맛있다. 바다든, 산골이든, 도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지락칼국수다. 어촌계에서 잡은 바지락으로 바로 끓여 내기에 시원한 맛에 단맛까지 있다. 수산물의 맛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한다. 어촌계에서 수확한 바지락을 경매하는 장소와 식당이 40m 정도 떨어져 있다. 맛이 떨어질 틈이 없다. 올해 세 번 영흥도에 가서 세 번 밥을 먹었다. 두 번은 칼국수, 한 번은 회덮밥이었다. 네 번째도 칼국수일 것이다. 회덮밥이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날그날 잡힌 우럭이나 놀래기가 든 회덮밥도 맛있지만, 바지락이 듬뿍 든 칼국수가 역시 한 수 위다. 내리 어촌계 식당(032-886-2044)

이달 25~26일 두 번째 장터가 열린다. 섬이라서 제약이 많다. 바다가 허락해야 하고, 밤이면 작업을 못하기에 다른 장터보다 종류는 적다. 대신 하나하나 맛이 옹골차기에 쉽게 지갑이 열린다. 필자도 집에 가는 길에 손에 든 꾸러미가 네 개였다. 대청도에서 잡은 1m짜리 대물 삼치 토막 낸 것, 장모님 드릴 연평도 갯가재, 딸아이 반찬으로 쓸 장봉도 김을 샀다. 하나 더 있었다. 대청도 자연산 홍합과 성게 알 냉동한 것도 샀다. 25일에 간다면 살 것은 정해져 있다. 섬에서 나는 백고구마를 살 예정이다. 연중 딱 한 번 가을에만 잠시 즐길 수 있는 고구마이기 때문이다. 1년에 세 번 찾아오는 옹진군 장터에서 먹을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놓치면 후회할 맛들이 정말 많은 장터다.

■ 필자 김진영

경향신문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김진영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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