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송환법 철회 늦었다”…결단 못한 정부에 불신 쌓여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도 요구…반중·친중 시위대 충돌 격화
중국 건국 기념일 후 ‘가닥’
성조기 들고…오성홍기 흔들고 홍콩의 반중국 시위대가 15일 도심에서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위 사진). 홍콩의 친중국 시위대가 지난 14일 카오룽베이 아모이 플라자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흔들고 있다. 홍콩 |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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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가 16일로 100일째를 맞았다. 시위를 촉발시킨 송환법은 철회됐지만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갈망은 더 커졌다. 시민들은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을 요구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날 홍콩 성도일보에 따르면 전날 시위대는 오성홍기를 불태우면서 화염병과 벽돌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로 강제 해산했다. 친중·반중 시위대도 충돌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또다시 실탄 경고 사격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 어떻게 악화했나
시발점은 지난 6월9일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이 주도한 ‘빅토리아 집회’다. 주최 측 추산 103만명이 모였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최대 규모였다. 16일에는 홍콩 정부가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데 분노해 주최 측 추산으로 200만명이 모인 시위가 벌어졌다.
캐리 람 장관은 6월15일 송환법 추진을 “보류한다”고 밝힌 데 이어 7월9일 송환법이 “사망했다”고 했지만, 성난 민심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시민들은 캐리 람 장관의 발언이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 5대 요구를 내세웠다.
특히 지난달 12일 시위 참여 여성이 경찰의 빈백건(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에 맞아 실명 위기에 처하면서 분노는 극에 달했다. 시위대가 홍콩국제공항을 점거해 항공편 무더기 취소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프린스에드워드 전철역에 최정예 특수부대 ‘렙터스’가 투입돼 시위대 63명을 체포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이달 2일부터 총파업, 동맹휴학으로 시위가 각계각층으로 번지자 결국 람 장관은 지난 4일 송환법 공식 철회를 선언했다.
하지만 캐리 람 장관의 발표를 두고 “너무 부족하고 너무 늦었다”는 반응이 많다. 1000명이 넘는 시위 참여자가 체포되고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시민이 속출한 상황에서 이 같은 대책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국 눈치를 보며 결단을 미뤘던 홍콩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도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 시위 장기화할까
2014년 79일 동안 도심을 점거한 채 민주화를 요구했던 ‘우산혁명’보다 길게 시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시위대는 반중국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시위대는 ‘일국양제’ 원칙을 지킬 것을 요구하지만,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한다.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이 점차 두드러지는 것도 사태를 꼬이게 하고 있다.
우산혁명 주역인 조슈아 웡은 미국을 방문해 미·중 무역협상에 홍콩 문제를 의제로 포함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내정간섭을 구걸한다”며 비판했다.
현재로선 내달 1일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일 후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이 건국절 후에는 모종의 결단을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유화책을 내놓는다면 경찰의 강경 진압 조사 등 시위대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사태가 완화되지 않을 경우 인민해방군 또는 무장경찰의 무력개입이나 홍콩 정부 ‘긴급법’ ‘공안조례’ 발동 등 강경책이 나올 수도 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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