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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은희경 작가 "세대·젠더·계급 넘어 인간 이해하는 소설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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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장편소설 '빛의 과거' 출간

기숙사 여대생들 통해 당대 사회·문화 그려

"10년간 수정·보완하며 완성…정말 후련해"

이데일리

은희경 작가는 “국가의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개인도 소중하다는 일깨워주는 게 문학작품”이라며 “문학 속에서 여러 인간을 만나면서 우리는 성숙하게 된다”고 말했다(사진=문학과지성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나와 다른 세대, 젠더, 계급에 대한 선입견 없이 그냥 진짜 ‘인간’을 이해하는 소설이었으면 해요. 문학이란 게 인간을 고유한 존재로 이해하려고 하는 이야기잖아요.”

문단의 빛나는 이름 은희경(60). 그녀의 새 장편소설 출간 소식에 독자뿐 아니라 후배 작가들도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정세랑 소설가는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라고 했고,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은희경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은 뉴스가 되지만 그 작품이 ‘좋다’는 사실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며 언제나 기대를 충족시키는 그녀의 필력을 칭찬했다.

‘태연한 인생’ 이후 7년 만에 낸 장편소설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도 예외는 아니다. 1977년 과거와 2017년 현재를 오가는 구성을 통해 서툰 기숙사 여대생들이 어떻게 서로의 ‘다름’을 느끼면서 섞여가는지 매력적인 문체로 풀어나간다.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문학과지성사 본사에서 만난 은 작가는 “나는 그저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잘 쓰려고 하는 동시대 작가일 뿐”이라며 “그 시절을 되살려낸다는 느낌보다 지금 시점에서 과거와 타인에 대한 서로간의 오해를 좁히는 소설이란 생각으로 썼다”고 집필의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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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를 잇는 ‘빛’

‘빛의 과거’는 1977년 숙명여대 기숙사와 40년뒤인 2017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유경은 기숙사에 함께 살았던 소설가 친구 희진이 쓴 소설을 읽으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과는 너무도 다른 친구의 소설 속 ‘나’를 만나곤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학보사에서 수습기자 활동을 하는 ‘유경’과 소설가 ‘희진’에게는 작가의 모습이 투영돼있다. 실제 숙명여대 시절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은 작가는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취재 노트에 이름, 지명, 특집 기사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서 도움이 됐다.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거면 소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 이야기를 왜 쓰려고 하는지’ 계속해서 질문하게 되더라. 평범하게 가는 것보다 40년 후의 인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엔 파장을 맞은 인생도 있고, 한국사회의 경쟁주의·권위주의에서 탈피했던 사람이 평범하게 늙어간 모습도 나온다.”

연희문학창작촌에 들어가서 자료를 정리하고 있을 때 일명 ‘강남역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은 작가는 “‘40년 전 그때 우리가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젊은 친구들이 싸워야 하는 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1970년대에 쏘았던 빛들이 지금 현재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의 문이 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1977년의 이야기는 3월 신입생 환영회, 봄의 첫 미팅과 축제, 가을의 오픈하우스 행사 등 주요 사건을 위주로 진행된다. 유경의 서사를 중심으로 322호와 417호의 룸메이트인 일곱 여성들의 에피소드를 다채롭게 전한다. 대학생들이 연행·수배되어 갔던 긴급조치 9호의 시대를 세밀하게 묘사할 뿐 아니라, ‘대학가요제’ ‘싱어롱 다방’ 등 소설에서 만나는 그 시절의 풍경은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듯한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제목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빛’이라는 의미에서 지었다. 계간 문학과사회에 연재하던 것을 묶어 낸 것인데, 10년간 실패하고 또 실패하면서 결국은 해낸 이야기다. 연재를 끝내고 원고를 고치는 과정에서 왼쪽 눈의 망막에 구멍이 나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성한 책이라 정말 후련하다.”

◇“세대 간 벽 깨는 이야기 하고파”

은 작가는 1995년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데뷔했다. 당시에도 ‘대형 신인’이라던가 ‘문단의 신데렐라’ 같은 수식어로 소개되곤 했는데, 20여년이 넘도록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섰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를 비롯해 장편소설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소년을 위로해줘’ 등을 통해 꾸준히 독자와 만나왔다.

“살아가면서 닥치는 질문들을 소설로 쓰곤 한다. 지금은 자기 목소리를 더 많이 내는 시대지만, 옛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사회가 그다지 달라지진 않은 것 같다. 그 벽을 깨는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 지금까지 사람들과의 관계, 소통의 부재를 소재로 이야기를 많이 써왔는데 서로의 다름까지도 인정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나가고 싶다.”

인터뷰 말미에 후배 작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은 작가는 “요새 작가들은 진화된 소설가 혹은 부잣집에서 태어난 사람들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글도 잘 쓰고 상상도 잘 한다”며 “동시대를 읽어내는 질 좋은 글들을 써내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좋은 환경”이라고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당대의 현실을 읽어내는 날카로운 눈과 문학다운 문학을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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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사진=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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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사진=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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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사진=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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