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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뮈스카댕(muscadin)`과 `앵크루아야블(Incroyables)`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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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110] 1. 뮈스카댕의 후계자 '앵크루아야블(Incroyables)'

테르미도르 반동이 성공하고 그 주축이었던 뮈스카댕이 힘을 얻자 조롱의 의미가 담긴 '뮈스카댕'이란 표현을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뮈스카댕' 대신 '앵크루아야블(Incroyables)'이란 표현을 썼다. '대단한, 놀라운, 기발한(incredible)'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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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앵크루아야블을 묘사한 삽화 /출처= ⓒ영국국립박물관 홈페이지


2. 앵크루아야블의 특징

앵크루아야블의 패션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위 사진 속 인물의 패션은 얼핏 보면 그저 감각 좋은 멋쟁이의 옷차림으로 보인다. 그러나 확대해 보면 현대 대도시에 나타나도 당장 주목받을 것 같은 독특함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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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속 우측 인물의 확대도


가. 2각모(bicorne)

당장 눈에 띄는 것은 모자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기로 저 모자는 일명 '나폴레옹 모자'라고도 하는 '2각모(bicorne)'이다. 나폴레옹은 전장에서 항시 2각모를 쓰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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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각모를 쓰고 있는 나폴레옹. 상단 그림 배경을 보면 다른 장병들도 2각모를 쓰고 있다. /출처= ⓒnew.qq.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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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나폴레옹 2각모 /출처= ⓒageofrevolution.org


그런데 나폴레옹이 왜 2각모를 쓰고 다녔는지, 2각모의 유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폴레옹은 대략 1800년께부터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3색 코키지(cockade) 장식을 한 2각모를 썼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의 주역인 평범한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3색 코키지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에 참가한 혁명 주동 시민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2각모는 다름 아닌 테르미도르 반동에 참가한 뮈스카댕(앵크루아야블)의 상징이었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젊은 세대 중 혁명 세력과 반동 세력 모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이다.

아래 사진 중 상단의 것은 나폴레옹이 실제 썼던 2각모이고, 하단의 것은 앵크루아야블의 2각모를 그린 삽화이다. 둘 사이에 차이점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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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좌)과 앵크루아야블(우)의 2각모. 참고로, 좌측의 것은 국내 기업 회장이 경매를 통해 구입·소장 중이다.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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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각모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로베스피에르를 적으로 규정하고 반동을 준비하던 뮈스카댕(앵크루아야블)이 챙 넓은 모자를 구기고 지나가는 마차 바퀴 아래에 집어넣어 반으로 접어 쓰기 시작했다. 로베스피에르가 살아생전 쓰던 챙이 넓은 모자(brimmed hat)를 훼손하여 쓰고 다니는 일종의 시위였다. 여기에 더하여 찌그러지고 접힌 모자에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3색 코키지를 달았다. 그러하니 이것은 일종의 반-로베스피에르, 반-혁명 모자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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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로슈 비뉴롱(Pierre Roch Vigneron)의 1860년 작, "말시밀리엥 드 로베스피에르". 챙이 넓은 모자를 들고 있다. /출처= ⓒfineartamerica.com


나. 분 뿌린 가발을 길게 늘어뜨린 산발

머리 스타일도 마찬가지이다. 위 사진에서 보듯 로베스피에르는 분을 뿌린 귀족 가발을 썼는데, 앵크루아야블은 로베스피에르를 포함한 귀족에 대한 조롱, 저항의 표시로 분 뿌린 가발을 헝클고 늘어뜨려 산발을 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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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크루아야블의 산발한 머리. 그냥 머리를 산발한 것이 아니고 귀족용 분 바른 가발을 잡아당기고 쥐어뜯어 저렇게 만들었다.


흥미롭게도 이 산발 머리 스타일이 나중에 프랑스 성인 남성의 표준 머리 스타일이 된다. 아래 그림에서처럼 나폴레옹도 젊었을 때는 이 머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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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 Gros)의 1801년 작, "아르콜 다리 위의 보나파르트" /출처= ⓒageofrevolu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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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옷자락을 코트 밖으로 내놓기

옷자락을 코트 밖으로 내놓은 것은 로베스피에르가 공포 정치 중 단행한 기간 동안 프랑스인들에게 가해진 각종 규제에 대한 저항이었다.

옷자락뿐만이 아니다. 목에 맨 크라바트도, 스타킹도 밖으로 내놓았다. 여기에 더하여 겉으로 내놓은 옷이나 스타킹에 시커먼 때가 꼬질꼬질할수록 멋있는 것으로 치부했다. '그게 무슨 멋이냐.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커먼 때가 묻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2019년 현재에도 유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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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묻은 신발` 콘셉트로 대박을 친 신발들. 사진 속 신발 모두 신상품이며 모두 고가의 명품이다. /출처= ⓒ아마존


라. 복장의 각 부위를 과장하기

앵크루아야블은 크라바트·깃·소매·바지 매듭의 크기를 한껏 과장하고 곳곳에 원색과 줄무늬를 넣었다. 기록을 보면 앵크루아야블이 '크라바트를 얼굴과 목 주변에 둘러서 마치 갑상선염 환자처럼 보이게 했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다.

약 11세기께부터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왕이 '연주창'으로 통칭되는 갑상선염, 임파선염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왕이 민가를 돌며 연주창에 걸린 환자들을 만지고 성호를 긋는 것은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앵크루아야블이 갑상선염 환자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것은 왕권의 신성에 대한 부정이었던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반의 상식에 배치될 정도로 깃, 소매, 바지 매듭의 크기를 늘린 것, 서로 배치되는 원색과 어울리지 않는 줄무늬를 넣은 것 또한 프랑스 왕정의 역사와 제도를 부정하는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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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크루아야블의 과장된 복장을 풍자한 삽화들 /출처= ⓒ영국국립박물관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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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램소니우스의 1795년 작, "앵크루아야블" /출처= ⓒutpictura18.univ-montp3.fr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elyzc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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