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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北·日 평양선언 17년… 출구 안보이는 납북자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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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9·11 개각 뒤 민간 대표단 60명 방북 / 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 이후 / 양측 첨예한 입장차로 성과 못내 / 北 “완전 해결” vs 日 “12명 생존” / 아베, 김정은과 무조건 회동 제안 / 조선중앙통신 “日 대표단과 담화” / 양측 관계 개선 주요 계기 기대

“평소엔 이 바닷가에 오지 않습니다. 오고 싶지 않지만 오지 않으면 안 될 상황도 있습니다.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서 오늘은 이곳에 왔습니다.”

지난 6일 일본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 중앙해안에서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62) 니가타산업대 교수가 ‘그날’을 회상하기 싫은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스이케 교수는 21세 대학생이던 1978년 7월31일 오후 이곳 해변에서 데이트하던 중 여자친구(현 아내) 유키코(祐木子·63)씨와 북한공작원에게 납치돼 끌려간 납북 피해자다. 조선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에서 공작원 교육과 번역 일을 하던 하스이케 교수는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같은 해 10월 아내와 함께 귀국했다. 북한에서 태어난 딸(38)과 아들(34)도 2004년 5월 일본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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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피해자인 하스이케 가오루 일본 니가타산업대 교수가 지난 6일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 중앙해안에서 1978년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되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가시와자키=김청중 특파원


200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북·일 평양선언을 발표한 지 17일 17주년을 맞았으나 양측의 최대 현안인 납북자 문제 해결의 출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납북 피해자는 17명이다. 일본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와 니가타현경찰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들 중 하스이케 교수 부부 등 5명은 귀국했으며, 8명은 사망하고, 4명은 입북한 사실이 없어 납북자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사망자로 주장한 8명에는 1977년 13세 나이로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납치돼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상징적 인물인 된 요코타(橫田) 메구미씨(북한 1994년 자살 주장)가 포함돼 있다. 반면 일본 정부는 귀국자 5명을 제외한 12명의 생존을 상정해 전원 생환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전원 생존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북한이 반환한 요코타 메구미씨의 가짜 유골 논란이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2년 12월 2차 집권 후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드라이브를 강력히 걸었지만 북·일 간 첨예한 입장차로 가시적 성과는 없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관계의 진전 가능성이 엿보이자 아베 총리는 그동안 제기한 선(先)납북자 문제 해결 주장을 접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무조건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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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는 평양선언 17주년을 하루 앞둔 16일에도 도쿄 지요다구 사방회관에서 납치피해가족연락회(이하 가족회) 등이 공동주최한 ‘전 납치피해자의 즉시 일괄귀국을 실현하라! 국민대회’에 납치문제담당상을 겸직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 나란히 참석해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납치 피해자 가족은 물론 납치 피해자들도 나이가 들고 있어서 한순간이 시급하다”며 “나 자신이 조건을 달지 않고 김 위원장과 직접 마주 보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9·11 개각에서 스가 장관을 유임하고 지난해부터 북·일 접촉 창구였던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내각정보관을 신임 국가안전보장국장에 임명한 것은 총리 관저가 북·일 문제의 그립을 세게 쥐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9·11 개각 후 새로운 움직임도 감지된다. 1990년대 북·일관계 개선에 힘썼던 가네마루 신(金丸信·1914∼1996) 전 자민당 부총재의 차남인 가네마루 신고(金丸信吾)씨를 대표로 하는 60여명이 14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방북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류명선 북한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이 17일 가네마루 신고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이날 “류명선 조일(북일)우호친선협회 회장이 17일 조선(북한)을 방문하고 있는 가네마루 신고를 단장으로 하는 일조우호 야마나시현 대표단의 주요 성원들을 만나 담화를 하였다”고 전했다. 일본의사회는 아베 총리와 가까운 요코쿠라 요시다케(橫倉義武) 회장 제안에 따라 이달 하순 북한에 대표단을 보낼 예정이다.

가족회 측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지난 5월 2차례 피해자 가족을 만나는 등 납북자 문제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요코타 메구미씨의 남동생인 요코타 다쿠야(橫田拓也) 가족회 사무국장은 “납북자 문제는 북·미 양자 문제가 아니라 북·미·일 3자 문제라는 점을 김 위원장도 잘 안다”며 “올 연말이나 11월쯤 무언가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니가타·가시와자키·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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