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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삼성 노조 와해 증거 들이대도…“처음 봤다” “이런 게 왜,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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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들 재판 ‘모르쇠’ 일관

미전실 동향 문건 제시하자 “실무자가 한 일” 책임 전가

보고받은 문자메시지에는 “기억 전혀 없다” 잡아떼기

보다 못한 재판장이 ‘질책’

노조 와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그룹 임원들이 관련 문건이 증거로 나와도 “모르겠다”고 한결같이 답변하다 재판장에게 지적을 받았다. 문건은 삼성전자 본사에서 발견된 것이다.

17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는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피고인 32명의 재판이 열렸다.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 부장판사)는 ‘삼성 노조 와해’ 사건 재판에서 피고인 신문(피고인의 진술을 청취하는 절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7일엔 이상훈 의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열렸다. 이 의장은 삼성전자의 인사·노사 업무를 총괄하는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이었다. 검사는 지난해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문건을 화면에 띄웠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각 계열사의 ‘문제인력’(노조 관련 인물)을 감축한 내역을 ‘실적’으로 정리한 문건이다. 검사는 이 문건을 제시하며 “삼성전자에서 문제인력을 관리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냐”고 물었다. 이 의장은 “네”라고 답했다. 이 의장은 ‘CFO 의견’이라고 기재된 협력사 폐업 관련 문건도 “처음 본다”고 했다.

검사가 “노조 관련 사건·사고를 일으킨 구미 사업장 직원 6명 중 2명을 퇴직 조치하고, 4명을 안정화했다고 기재돼 있다”며 “이게 피고인의 조직 안정화 실적으로 잡혀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 의장은 “이런 게 왜 적혀 있는지 모르겠다. 제 소속이 인사팀이니까, 본인들이 한 일이니…. 업적이라고 그리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의장 자신은 몰랐고 부하 직원들이 의장의 업적이라고 기록한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이다.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는 노조원 사찰 보고 문자메시지를 두고도 “왜 제게 보고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10일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박 전 대표가 2013년 5월 윤석한 상무로부터 위영일씨, 신장섭씨 등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조원들의 동향에 대해 보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역을 제시했다. 위씨와 신씨는 삼성이 노조가 들어선 협력업체를 위장 폐업하는 과정에서 해고됐다. 검사는 이 문자메시지를 두고 “위씨와 신씨 거주지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자택 귀가까지 확인하는 내용”이라며 “채용 제외 결정을 한 후 지속적으로 문제인력인 위씨와 신씨의 동향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위씨와 신씨를 채용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은 제 기억에 전혀 없다”며 “왜 제게 보고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대표니까 보고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사가 “이후에도 (노조원) 동향을 파악하는 문자가 계속 보고되는데 어떤 이유인지 잘 모른다는 말씀이시냐”고 묻자 박 전 대표는 “문자를 받았을 때 좀 주의가 깊었으면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알았을 텐데 몰랐던 부분이 있다”고 했다.

피고인들이 “모르겠다”는 답변을 이어가자 재판장인 유영근 부장판사는 “노조 문제가 전자 본사나 미래전략실에도 보고가 되면서 (그룹 전체가) 움직인 것에 대한 여러 문건들이 나오고 있지 않느냐”며 “문건에 분명히 나와 있는데 다 안 했다고 하는 것인가”라고 따졌다. 박 전 대표는 “제가 대표였는데도 몰랐다”고 했다. “QR팀(삼성전자의 노조 와해 대응팀)이 도와주는 인력으로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상주하고 있었는데도 무슨 일을 했는지 보고를 받았어야 하지 않느냐”는 유 부장판사 지적에 박 전 대표는 “다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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