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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부자라고 벌금 더 매기는건 평등권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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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익은 정책 쏟아내는 당정 ◆

매일경제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가 피고인 재산 규모에 따라 벌금 액수에 차이를 두는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을 추진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벌금 차등화는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민주당과 법무부는 당정 협의를 하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사법·법무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재산비례 벌금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4일 "고소득자에게도 상대적으로 많은 세금을 부과하겠다"며 내건 공약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도 후보자 시절인 지난달 26일 "현 제도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부유층에게는 형벌 효과가 미약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산비례 벌금제는 '동일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피고인 재산에 따라 벌금을 다르게 산정하는 것이다.

현재는 연평균 소득 1억5000만원(상위 1%)인 A씨와 연평균 소득 2000만원(상위 70%)인 B씨가 음주운전으로 유죄 선고를 받더라도 동일한 벌금(700만원)을 낸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B씨가 벌금을 내지 못하면 70일간 노역을 해야 한다. 재산비례 벌금제가 적용되면 A씨와 B씨의 벌금 액수 차이가 1750만원까지 벌어질 수 있다. 두 사람에게 똑같이 70일에 해당하는 벌금형이 선고되면 A씨와 B씨는 각각 하루 30만원, 5만원으로 벌금을 달리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 벌금액은 1일 벌금액을 벌금 일수와 곱해 정해진다. A씨는 총 2100만원, B씨는 총 35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더 무거운 벌금을 매기면 평등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벌금 액수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지만 재산비례 벌금제 자체는 위헌 소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피고인 소득과 재산 규모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국민의 재산을 파악할 가능성도 있어 검찰권 축소를 주장하는 청와대·여당·법무부의 '검찰개혁'과는 방향이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또 현실적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모든 피고인의 소득·재산 규모를 파악하기 쉽지 않고, 행정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재산비례 벌금제가 실제로 도입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법무부도 자체적인 안을 마련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재산비례 벌금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최근 몇 년간 진행됐는데도 구체적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제도 도입을 위한 방안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재산비례 벌금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대통령령·법무부령 등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을 제·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별법을 모두 개정할지, 새로운 특별법을 제정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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