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호 변호사가 억울한 투로 말했다. 한 변호사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본 기업들을 도운 인물이다.
이날 법정에선 박 전 처장 측 노영보 변호사가 공격적인 질문을 쏟아내면서 한 변호사와 설전을 벌였다. 한 변호사는 2015년 5월 임 전 차장에게 강제징용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에 대해 들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피해자들 손을 들어준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다시 뒤집으려면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회부가 유력한 대안이었다. 한 변호사 진술이 재판 거래 및 개입 혐의의 주요 근거이기 때문에 노 변호사는 강하게 밀어붙였다.
“증인 말을 제가 신뢰를 못하겠습니다. 다 기억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왜 ‘아니죠’라는 대답이 없으십니까?” “주어가 없는 문장이 있을 수 있습니까? 법조인들 사이에서. 전원합의체 회부가 누구 의견인지는 당연히 나와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 이상을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노 변호사)
“꼭 그렇게 물어보셔야 됩니까?” “클라이언트(고객)한테 보고한 이야기는 좀 안 물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왜 자꾸 제가 검사 편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십니까?” “저를 무섭게 쳐다보지 마세요.”(한 변호사)
2019년 5월27일자 김용민의 그림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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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과의 대화 등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는 오히려 사법농단 피고인들의 발목을 잡았다. 피고인들은 김앤장과 일본 기업들의 대화 내용이 담긴 문건은 법정에 꺼내서도, 증인에게 물어봐서도 안 된다며 검찰 신문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런데 이날은 피고인 측이 대화 내용에 대해 신문했고, 한 변호사는 비밀유지의무를 이유로 증언을 거부했다.
노 변호사는 “검찰 신문 때는 분명히 클라이언트와 관련이 있는 일부 문건에 대해서만 증언을 거부했고 (김앤장의) 업무상 메모에 대해서는 분명히 답변을 했다”며 “검찰 조사에서는 대답을 시원시원하게 잘 하고 법정에 나와서 (피고인 측) 반대신문에 대해서만 이렇게 하느냐. 이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따졌다. 노 변호사는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법정에서 증언거부를 하면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한편 한 변호사는 임 전 차장의 ‘전원합의체 회부’ 언급이 양 전 대법원장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고 생각했다고 재차 증언했다. 한 변호사는 “윗분들 허락 없이 임 전 차장이 저한테 연락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양 전 대법원장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강제징용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간다면 임 차장이 논의하지 않았겠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김앤장이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추진한 게 아니라 법원의 소송 지휘에 저희가 협조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 권한인 소송 지휘를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가 행사한다고 이해했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임 전 차장 전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 변호사가 2015년 12월 작성한 메모에는 강제징용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3가지 옵션으로 ‘외교부 답변시까지 기다리는 방법, 대법원 적극적으로, 청와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기재한 내용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제 생각을 정리해본 것”이라고 했다.
“김앤장 변호사들은 강제징용 사건의 결론이 은밀한 정치적 흥정으로 결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느냐”는 노 변호사 질문에 한 변호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노 변호사는 “그렇죠. 그럴리가 없죠. 국내 최고의 로펌이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라고 했다. 노 변호사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대표였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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