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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사설] 내년 총선 의식하는 인권위의 부적절한 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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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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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내년 총선 때까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차원의 차별금지법과 인권기본법 관련 업무를 모두 미루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법이 정한 독립기구로서의 위상뿐 아니라 국가인권기구의 존재 이유에도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최 위원장은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인권위 내부에서 차별금지법과 인권기본법에 대해 아예 거론조차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인권위 내부 관계자들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결정을 내렸고, 조영선 사무총장이 최근 사직서를 낸 것도 이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따르는 위원회 조직의 최고책임자가 독임기구인 일반 정부부처에서도 보기 힘든 독단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차별금지법과 인권기본법 제정은 인권위원회의 핵심 과제이자 숙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최 위원장도 지난해 9월 취임 때 두 법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정 의지를 강력히 밝힌 바 있다. 17~19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고도 입법에 실패한 전례나 현재 국회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무작정 입법을 밀어붙이는 게 능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인 판단은 인권위가 아니라, 정치권이 할 일이다. 내년 총선 결과가 기대대로 나오지 않으면 어찌할 텐가.

설령 내년 총선 이후에 입법을 추진하려고 해도 인권위 차원에서는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데, 이조차 못하게 하는 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정부입법 절차에 필요한 시간까지 고려하면 지금부터 준비해도 결코 이르다고 볼 수 없다. 인권위 안팎에서 최 위원장의 입법 추진 의지에 의문을 품거나, 동성애 반대 세력에 대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뒷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인권위는 법률상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다. 모름지기 국가인권기구는 모든 국가권력에 대한 ‘문제제기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권위가 권력과 코드를 맞추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 국민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현병철 위원장 시절 똑똑히 목격했다. 당장 두 법률에 대한 업무를 재개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털어내고 최영애 위원장 체제에서 애써 회복 중인 인권위 위상을 지키는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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