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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ESC] 이사 하자마자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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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변의 슬기로운 소송 생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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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자취 중인 J씨는 살고 있던 집의 전세 계약이 만료되자 부동산 중개인 A씨의 중개로 새 전셋집을 구했다. J씨가 A씨에게 중개 수수료로 50만원을 지불하고 이사를 마친 지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집주인 B씨가 주택이 노후 되어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받았으니 방을 빼달라고 요구했다. 알고 보니 B씨가 J씨와 전세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이미 주택 철거 계고장을 받았는데도 J씨에게 이를 속이고 전세 계약을 체결한 것이었다. A 중개인은 집주인 B씨가 말하지 않아서 몰랐다며 발뺌하는데, J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집주인 B씨의 잘못으로 전세 계약이 종료되었으니, B씨가 J씨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J씨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해주어야 한다. 예컨대 J씨가 다른 집으로 이사하는 비용과 다른 집을 구할 때까지 임시로 머물러야 하는 집에 관한 비용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B씨가 사기를 친 것은 아닐까? 만약 B씨가 J씨와 계약을 체결할 당시, 주택을 곧 철거할 것이고, 그때 전세 보증금을 반환해 줄 생각이 없었다거나, 돈을 마련할 수 없었던 경우라면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주택을 철거하게 되었을 때 J씨에게 금전적인 배상을 해 줄 생각도 있었고, 경제력도 충분했다면 사기죄가 인정되기는 어렵다.

J씨가 부동산 중개인 A씨에게 책임을 물을 순 없을까? 공인중개사법상 개업 공인중개사는 중개 대상물의 상태, 입지 및 권리관계와 법령의 규정에 의한 거래 또는 이용제한사항을 중개 의뢰인에게 성실하고 정확하게 설명하고, 근거 자료를 제시하여야 한다. 만일 공인중개사의 고의 또는 과실로 중개 의뢰인에게 금전적 손해를 발생하게 한 때에는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A씨가 중개한 주택이 불과 한 달 만에 철거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주택이었다면, 단순히 집주인 B씨가 계고장 받았다는 사실을 A씨에게 숨겼다고 해서 A씨에게 잘못이 없다고 할 순 없다. 다만 A씨의 과실은 일부만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만일 A씨도 집주인 B씨가 철거 계고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기고 해당 주택을 중개한 것이라면 A 중개인의 고의가 인정되어 손해배상 책임도 크게 인정된다. 여기에는 중개 수수료를 비롯하여 J씨에게 실제로 발생한 금전적 손해가 포함되겠지만, J씨는 집주인 B씨가 배상해준 부분에 대해서는 A씨로부터 중복해서 배상받을 수 없다.

부동산 중개인의 책임과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사건이 있다. K씨는 2013년 6월께 공인중개사의 소개로 보증금 4000만원에 다가구 주택의 일부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는데, 2016년 1월께 주택이 강제 경매로 매각되고 말았다. 그런데 해당 주택에서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다른 임차인들이 있었다. 결국 K씨는 보증금 4000만원 중 1400만원만 받을 수 있었다.

공인중개사는 부동산 등기부상에 표시된 것을 모두 설명해줬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중개업자가 임대차 계약을 중개하면서 부동산 등기부상에 표시된 권리관계를 설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면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했다. 다만 중개인의 과실을 30% 정도만 인정해 결과적으로 의뢰인에게 78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가장 좋은 것은 계약을 체결할 때 조심하는 것이지만, 이미 체결한 임대차 계약, 전세 계약과 관련해서 분쟁이 생기면 집주인뿐만 아니라 부동산 중개인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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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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