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건지, 공장 등 들어서
이춘재 본적지 진안리 주변도 택지개발
흔적 없지만…주민들 "희생자 넋 달래고 도시 오명 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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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화성)=이관주 기자] 강산이 세 번 바뀔 만한 시간이 지나면서 전국민을 두려움과 분노에 떨게 한 '살인의 장소'는 작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찾은 경기도 화성시에서는 급격한 도시 개발로 인해 사건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국내 최악의 미제사건이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가 사건 발생 33년 만에 특정되자 지역 주민들은 조속한 수사가 이뤄져 '범죄도시'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사건이라 정확한 발생 지점, 시신 유기 지점을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10차례에 걸친 사건 현장 중 모방범죄로 드러난 8차 사건을 제외한 9번의 사건 가운데 대략적으로라도 추적이 가능한 7곳을 찾아가봤다. 1990년 경기 화성군의 인구는 18만명에 불과했다. 지속적인 도시 개발에 2001년 시로 승격한 화성시의 인구는 올해 8월 기준 8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사건 발생 현장으로 알려진 곳들 대부분은 아파트나 공원, 산업단지로 변해 있었다.
화성연쇄살인의 첫 시작이었던 태안읍 안녕리 풀밭은 산업단지로 바뀌어 있었다. 곳곳에 물류창고나 공장이 들어섰고, 사건 당시를 기억하는 이도 없었다. 1986년 9월15일 발생한 첫 사건에서 이모(당시 71)씨는 딸의 집에서 자고 나와 귀가하다 변을 당했다. 같은 해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가량 떨어진 3차사건 발생지 또한 공장과 창고가 대거 들어서 있었다.
9차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 병점리 야산.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근린공원으로 바뀌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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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의 본적인 진안리(현 진안동)에서는 2차와 6차 등 두 건의 사건이 일어났다. 9차사건이 발생했던 병점리 야산 주변도 도보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매우 가깝다. 이 가운데 9차 사건이 있던 곳은 1993년부터 시작된 태안진안지구 개발로 이미 아파트 숲을 이루고 있었다. 야산은 근린공원으로 조성됐고, 주변에는 도서관도 들어섰다. 주민 상당수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후 입주한 외지인들로, 당시 현장을 아는 이를 찾기 어려웠다.
10년 전부터 살았다는 주민 김관석(48)씨는 "화성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더니 주변 지인들이 이 사건부터 언급할 정도로 워낙 유명해 익히 알고 있었다"면서도 "이 주변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이곳은 여중생 김모(당시 14)양이 귀가 중 피살된 곳으로 알려졌다. 김양은 손발이 결박된 채 온 몸에 상처가 난 상태로 목 졸려 참혹하게 숨졌다. 여기뿐 아니라 2차 사건이 있었던 진안리 농수로, 10차 사건이 발생한 반송리 야산 일대도 모두 공원으로 탈바꿈한 상태였다. 그나마 4차사건 지점인 정남면 관항리 논둑, 5차사건 지점인 태안읍 황계리 논 일대만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도시개발과 함께 주민들의 기억도 희미해졌지만 33년 만에 진실을 드러내는 데 대한 기대감은 컸다. 진안동 한 주민은 "이제까지 화성에서 산다고 하면 '살인의 추억' 그 도시가 아니냐는 좋지 않은 얘기부터 나왔다"며 "사건이 샅샅이 밝혀져 희생자의 혼을 달래주고, 도시의 오명도 씻어낼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화성=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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