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자 이윤성·유성호 "초기 혈액형 판정 잘못됐을 것"
1987년 1월 5차 사건 현장인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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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이모(56)씨의 혈액형이 과거와 다른 것을 두고 논란이 여전하다. 혈액형이 다르니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1986~91년 10차례 범행 당시 경찰은 4,5,9,10차 사건 범인의 정액·혈흔·모발 등을 검사해 용의자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씨는 O형이었다. 이씨의 2심 재판부는 94년 "범행 현장에서 수거한 모발 중 피고인(이씨)의 혈액형과 같은 O형의 두모 2점, 음모 1점 등이 나왔다"고 밝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법의학 전문가들은 "초기 혈액형 판정이 잘못됐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명예교수는 "피해자 혈액형이 뭔지 봐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피가 섞이는 경우가 있다. 피해자가 A형, 가해자가 B형이면 혈흔이 AB형으로 나오기도 한다. 각각 A형,O형이면 A형으로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현장 혈흔은 피해자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이 교수는 "가해자는 피해자의 반항에 의해 다치기 때문에 피를 많이 흘리지 않는다. 피해자가 여자이면 가해자가 피를 흘릴 가능성이 더 작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모발도 처음에는 누구 건지 모르고 검사한다"고 덧붙였다.
정액도 꼼꼼히 봐야 한다. 이 교수는 "여성의 질 분비물과 남성의 정액이 섞이는데, 이걸 토대로 혈액형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가령 여성이 A형이고, 증거물이 A형으로 나오면 남성이 A형이나 O형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를 근거로 '남성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과거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거나 군에 입대할 때 혈액형을 측정했는데, 80년대만 해도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던 사람이 17%에 달했다고 설명한다. 외국에서는 범인이 혈액 샘플을 바꿔치기해서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4,5,9,10차 범행 때 어떤 증거물로 혈액형을 판정했는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혈액형을 왜 B형으로 판정했는지 알 수 있다"며 "증거물을 채취할 때 엄격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자칫하면 증거물 관리 비난에 방어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유성호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도 "과거 혈액형 판정이 잘못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유 교수는 "어떤 시료를 썼는지, 시료의 양이나 오염 정도가 어떤지에 따라 정확도가 결정되는데, 그런 조건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며 "혈액형 실험은 다소 주관적 판단을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지금은 세포 15개만 있어도 범인을 잡을 수 있다. 유전자 실험 기술이 나날이 발전한다. 지금은 유전자로도 혈액형을 판단할 수 있다"며 "혈액형보다 DNA 기법을 비교하면 DNA 기법이 훨씬 정확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1980년대에서야 사람마다 유전자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판정 기준도 98년에서야 미국에서 확립됐다. 화성살인 사건 당시 '유전자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데, 과학기술의 수준이 지금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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