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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朴대통령 시해 뒤… 복권추첨, 활쏘기 대신 공뽑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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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복권 50년과 한국사회

조선일보

일러스트=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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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장모(46)씨는 월요일마다 복권방에 간다. 7, 11, 19, 23, 36, 45. 아무 계통이 없는 숫자 6가지를 골라 돈을 지불하고 지갑에 고이 넣는다. 로또 1등 당첨은 벼락 맞을 확률(100만분의 1)보다 낮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산다. 벼락 같은 축복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까.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매주 수백만 명에 이른다. 장씨는 이 습관을 "1000원이면 품을 수 있는 1주일 치 희망"이라고 불렀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40대 이상 중장년에게는 두근두근 추억을 불러내는 문장이다. 주택복권은 1969년 9월 15일 처음 발행됐다. 50년 전이다. 국내에서 정기 발행된 최초의 복권. 서민들이 복권을 사기 시작한 지 올해로 반백년이 된 셈이다. 주택복권 1회는 서울에서만 50만장이 발행됐는데 놀라지 마시라. 1등 당첨금은 300만원이었다. 요즘은 300만원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이 많지 않다. 하지만 당시는 서울 서민 주택이 200만원 안팎이던 시절이다.

"집 없는 분 도와주고 복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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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발행된 최초의 주택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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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9월 13일 자 신문에 등장한 주택복권 광고다. 지금 보면 순박하고 재미없는 광고 카피다. 복권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주택복권은 '군경 유가족과 월남전 참전 장병 등 무주택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 건립 기금 마련'이 발행 목적이었다. 당첨금(소멸 시효 3개월)은 주택은행에서 수령했다.

장당 판매가는 100원. 당시 청자 담배 한 갑 가격과 같았다. 1등 상금은 처음엔 500만원으로 논의하다 300만원으로 낮췄다. "사행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1970년 국립대학 1년 수업료는 약 3만원. 300만원은 서민이 만지기 어려운 거금이었다. 주택복권 1회 1등 당첨자는 서울 청량리 시장에서 과자가게를 운영하던 허모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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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복권은 시작할 땐 서울에서만 살 수 있었고 판매 기간도 보름으로 길었다. 당시 추첨은 판매 종료 후 닷새 뒤에 했는데, 복권 한 장을 사고 20일 가까이 기다려야 당첨 여부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3주일치 희망이니 그때가 더 호시절일까? 주택복권 1회(총 50만장)는 인기가 시들해 판매 기간을 사흘 연장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2회부터 판매 지역이 확대됐고 1970년대 초부터는 발행 주기가 주 1회로 짧아졌다.

숫자가 적힌 원형 회전판에 화살을 쏴 당첨 번호를 정했다. 과녁은 빠르게 돌았고 화살은 눈 깜짝할 사이에 꽂혔다. 추첨 방송이 TV로 중계되던 시절 진행자가 외치던 "준비하시고~ 쏘세요!"는 전국적인 유행어였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미녀들이 어떤 숫자에 화살이 꽂혔는지 보여주고는 싱긋 웃었다. 초대 가수의 노래가 낙첨의 아픔을 달래주기도 했다.

김동식 인하대 교수는 "추첨 방식은 1979년 이후 '쏘세요'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이유로 공이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며 "사람들은 주머니 속 복권 한 장을 만지작거리며 고된 하루하루를 견뎠고, 흥청망청 당첨금 탕진에 가정파탄, 패가망신은 요즘 로또 시대와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1등 당첨금은 당대의 '돈벼락'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은 주택복권이 아니다. 1947년 12월 발행된 올림픽 후원권이 시작인데, 이듬해 영국 런던올림픽 참가 경비 마련이 목적이었다. 복권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것은 1956년이다. 당시 정부는 전쟁 복구비를 충당하려고 매달 1회씩 총 10회에 걸쳐 애국복권을 발행했다. 또 산업박람회 복표(1962년), 무역박람회 복표(1968년) 같은 이름으로 복권이 나오기는 했지만 최초로 정기 발행된 대한민국 복권의 대명사는 주택복권이다.

주택복권은 1983년 제574회까지 나왔다가 그해 4월에 올림픽복권을 발행하면서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올림픽복권은 88올림픽이 열린 1988년까지 298회로 끝났고 이듬해 1월부터 주택복권으로 환원됐다.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은 1978년 1000만원으로 오른 것을 시작으로 계속 상승했다. 1981년 3000만원, 1983년 1억원, 2004년 5억원…. 우리 국민이 꿈꾸는 '돈벼락'이 어떤 속도로 가파르게 불어났는지 가늠할 수 있다. 1등이 5억원을 수령할 때 2등은 2억5000만원, 3등은 100만원을 받았다.

주택복권 독점 시대는 1990년대 들어 여러 종류의 복권이 나오면서 폐막했다. 1990년 9월에는 첫 즉석복권인 엑스포복권이 등장했고, 주택은행은 21세기를 앞두고 사상 최고 당첨금을 내건 밀레니엄복권을 판매하며 복권 열풍에 항공유를 부었다. 복권방도 늘어났다. 2002년에는 마침내 로또복권이 한국에 상륙했다. 로또복권은 열풍을 일으키며 복권 시장을 90% 이상 점령해나갔다. 주택복권은 2006년 녹색복권, 관광복권 등과 더불어 퇴출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돼지꿈 꾸면 사야 하나?

복권 시장으로 한국 사회를 가늠할 수도 있다. 복권백서에 따르면, 주택복권이 발행된 1969년부터 1989년까지 21년간 복권은 6017억원어치 판매돼 수익금 2551억원이 조성됐다. 1990년 1070억원, 1995년 4200억원 등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던 복권 시장은 IMF 외환 위기를 겪은 1998년에 총판매액이 3209억원으로 감소했다. 복권위원회는 "경제가 어려워지면 복권 판매가 증가한다는 가설이 틀렸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한다.

연간 복권 판매량은 2003년에 로또복권(온라인복권) 열풍으로 4조2342억원이라는 극점을 찍었지만, 정부가 1게임 가격을 2000원에서 1000원으로 조정하는 등 사행성 완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선 3조원대 판매액을 기록하고 있다. 월별 판매 동향을 보면 대체로 연초와 연말에 많이 팔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복권 등장 이후 50년 동안 국내에서 판매된 복권은 약 60조원을 향해 간다.

복권 당첨금은 판매액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 중 10%는 발행 및 판매 비용으로, 40%는 복권기금사업(주거안정 등 공익사업)에 재원으로 쓰인다. 돼지꿈을 꾸면 당첨 확률이 높을까. 2009년 복권위원회가 1등 당첨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있다. '조상과 관련된 꿈을 꿨다'가 47%로 으뜸이었고 '물 또는 불 꿈을 꿨다'(10%) '신체 관련 꿈을 꿨다'(8%) '돼지 등 동물 꿈을 꿨다'(5%) 순이었다. 복권 1등 당첨은 '조상님이 보우하사'란 말인가. 믿거나 말거나.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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