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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33년前 사건'의 취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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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하지만 사건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보면 이 말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바로 억울한 죽음은 있는데 범인은 없는, 이른바 '장기 미제 사건'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젠 잡기 글렀다" 체념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범인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드시 끝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는 듯.

그날의 '끝'은 한밤중의 속보로 시작됐다. '화성 연쇄살인 유력 용의자 확인.' 순간 머릿속이 백지가 됐다. "뭐라고?" "헐" "대박" 제작진 소셜미디어 대화방에서도 한동안 이런 멍한 단어들만 오고 갔다. 필자가 방송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미제 사건이었는데 용의자를 발견하다니, 그것도 33년 만에 갑자기! 하지만 넋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거대한 일의 '끝'은 제작진에겐 특별 방송의 '시작'이니까.

일단 당시 수사 담당자부터 접촉에 나섰다. 그동안 몇 차례 이 사건을 다뤘기 때문에 다행히 수사 담당자와는 안면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언론사들의 취재 경쟁이 시작됐기 때문에 그가 출연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망설이는 그에게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었는지 긴 시간 설득하고서야 출연 승낙을 받았다.

조선일보

다음은 프로파일러와 법의학자 순서, 엽기적인 범행 수법에 전문가 분석이 절실했지만, 갑자기 시간 낼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섭외에 실패하고 낙담하고 있는데, 생방송 직전 한 권위 있는 프로파일러가 응답을 해 왔다. 출연은 못하지만, 전화로 인터뷰를 해 주겠다는 것이다. 늦은 밤 다급한 요청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섭외 전쟁이 치열했던 수사 담당자가 독점 출연한 덕에 스튜디오 앞에 타사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는 진풍경까지 벌어지며 특집 방송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정신없이 방송을 준비한 제작진 역시 33년 장기 미제 사건의 '끝'을 봤다는 후련함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하지만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등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일이 의미를 갖는 것은 수많은 다른 미제 사건이 새 희망을 가졌다는 것이다. 경찰 미제전담팀이 다시 의지를 다지듯, 사건 프로그램 제작진도 미제 사건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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