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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신춘문예 200번 넘게 떨어졌습니다”…성공아닌 ‘실패’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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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9 실패박람회’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웹툰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신춘문예에서 200번 넘게 떨어졌습니다.”

시인 김정수는 ‘실패’에 대해 “남들처럼 보편적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 나름의 고독한 공간으로 들어서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해마다 문인으로 등단하지만, 저는 소위 말하는 ‘1%’에 들지 못했다”며 “하지만 예술하는 데 실패는 대단한 힘이 됐다”고 말했다.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김 시인을 비롯해 소설가 이외수 등이 실패에 대한 담론을 주고받았다. 이날부터 개막한 제2회 실패박람회에서다. ‘실패를 넘어 도전으로’라는 슬로건으로 개막한 실패박람회는 실패에 대한 경험담을 공유해 우리 사회의 자산이자 밑거름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실패’ 주제로 박람회…“실패도 과정”, “실패해봐야 실패하지 않을 수 있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실패박람회가 열리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실패’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그로 인한 취업난, 고령사회로의 진입 등은 우리사회가 맞닥뜨린 과제이자 실패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날 실패박람회를 찾은 취업준비생 정모(34)씨는 “오랜 시간 취업이 되지 않아 ‘남들처럼 살 수 없다’는 좌절을 느낀다”면서도 “실패도 경험이자 과정이라는 걸 오늘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4년째 세무사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이모(30)씨는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실패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게 아주 의미 없는 과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실패를 해봐야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외수 작가는 실패를 주제로 문학콘서트의 진행을 맡았다. 이 작가는 “저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 슬하에서 동냥밥을 얻거나 이삭을 주워 끼니를 해결하며 자랐다”며 “그런 환경에서 저는 실패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늘 실패만 거듭하는 인생을 살았지만, 요즘 세대는 저를 ‘존버’ 정신의 창시자라고 불러준다”며 “버티는 것만이 실패를 이겨내고 성공을 기다리는 밑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패하지 않아 본 성공은 성공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방황만이 진실한 고백이듯, 인생의 참맛은 실패를 모르고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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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9 실패박람회’에 참가자들이 ‘실패’로 지은 2행시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실패도 소중한 경험으로 축적해야”

박람회 한편에서는 창업의 실패를 맛본 재창업 도전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이 행사에서는 전문가로 구성된 국민참여평가단이 실패경험을 딛고 재창업에 나선 기업들에 대한 평가와 자문을 도왔다. 비티엔 이병열 대표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돼지 면역력을 향상하는 백신 항체 형성 촉진제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톰스 이문희 대표는 소시지와 순대 껍질로 만든 친환경 쓰레기봉투 ‘쓰봉’을 선보였다.

박람회에 참석한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은 “김연아 선수가 수없이 넘어지며 연습한 끝에 금메달을 딴 것처럼 한국 경제가 도약하기 위해선 실패 역시 소중한 경험으로 축적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사업 전환 등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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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9 실패박람회’에 참가자들이 써 놓은 ‘오늘 만난 실패’와 관련한 사례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실패 용인하는 사회, 2030세대 중심으로 실패 공유에 적극

이번 행사를 주관한 행정안전부가 2년 전 실패를 주제로 박람회를 준비하게 것은 우리 사회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였다. 단순히 실패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을 넘어 실패에 대한 법·제도를 지원하는 데 토대가 되도록 하는 것도 목적이었다.

이미 해외에서는 실패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하다. 핀란드 헬싱키 소재 알토대학의 경우 2010년부터 매년 10월13일이 ‘실패의 날’로 지정하고 관련 행사를 열고 있다. 학생과 교수가 모여 자신의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창업 실패를 축하하는 실패페스티벌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실패를 용인하는 것에 사회 전반이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지만, 2030세대를 중심으로 실패를 공유하는 데 적극적이다. 최근 유튜브에는 20∼30대의 창업 실패담, 주식투자 실패담, 퇴사 경험담 등이 올라와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실패를 공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경우도 있다. 로스쿨 출신으로 변호사시험에 도전했다가 떨어진 A씨는 최근 변호사시험을 5회로 제한하고 있는 현행법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주장하기도 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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