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1 (월)

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다, 기후위기 때문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청소년기후소송단 회원들이 지난 3월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김희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도에 사는 고등학교 1학년 김도현양(16)은 금요일인 9월 27일 등교하지 않을 계획이다.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벌이기 위해서다. 그는 10대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활동 중이다. 무단결석은 아니다. 이미 학교에 현장체험학습 신청서도 냈다. 김양은 “우리가 지향하는 건 학교나 선생님이랑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설득해서 우리의 취지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석시위는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시작한다. 목표 인원은 2000명. 기후변화 전문가들을 초청해 거리 강연을 연다. 화력발전소를 상징하는 ‘석탄공’을 이용한 피구, 박 터뜨리기 등 ‘기후변화 가을운동회’도 계획하고 있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확산시킨 ‘학교 파업’(결석시위)에 한국 청소년들도 동참하는 것이다.

전세계 시민사회 ‘기후 파업’ 선언

“초등학교 때부터 지구온난화 얘기는 많이 들었죠. 근데 기후위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수록 단순히 북극곰들의 문제가 아니고 내 생존권 문제더라고요. 너무 절박하고 두려운데 어른들과의 온도차가 너무 커요. 2100년까지 지구의 기온 상승폭이 1.5도 이내여야 하는데 벌써 1도가 오른 상태래요. 내가 살아갈 환경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학교까지 빠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9월 21일 서울 대학로에도 앞날을 걱정하는 시민 수천 명이 모인다.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주체가 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다. 두 움직임의 핵심 요구는 정부의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포다. 지금 우리가 위기상황에 놓였다는 걸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가 기후위기를 고민하고 있다. 21일 미국 뉴욕에서는 사상 처음 ‘유엔 청년 기후정상회의’가 열린다. 한국에서는 청소년기후행동·지속가능청년네트워크 소속 4명이 참여했다. 23일에는 유엔 기후정상회의가 이어진다. 전세계 시민사회는 유엔 일정에 맞춰 9월 20일부터 27일까지 일주일간 ‘기후 파업’을 선언했다. 올해 본격화된 시민사회의 압력에 영국, 프랑스, 독일, 뉴질랜드 등 10여개국은 기후위기를 선포했다. 이중 다수는 이산화탄소 배출 ‘순 제로’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인간 활동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과 공기 중에서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양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미다.

2015년 세계 195개국은 파리협정을 통해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도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한 발 더 나아가 1.5도까지 기온 상승을 억제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했다. 이미 산업혁명 이후 100여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이 1도나 오른 상황. 폭염을 비롯한 기상이변 뉴스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매우 불충분”

각국 전문가들이 모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도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IPCC는 지난해 만장일치로 채택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통해 1.5도로 목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0.5도 차이가 초래하는 변화는 엄청나다. 평균기온이 1.5도 올라가면 여름철 북극 빙하가 100년에 한 번 꼴로 사라지지만 2도 올라가면 10년에 한 번 사라진다. 2도가 오르면 산호가 99% 이상 소멸한다. 1.5도에선 70%까지 줄일 수 있다.

빈곤계층과 사회적 약자가 입는 피해규모도 다르다. 평균기온 2도가 올라가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의 곡물 수확량이 크게 줄어 영양공급 문제가 심각해진다. 1.5도로 억제하면 기후변화로 빈곤해지는 인구가 수억 명 줄어든다. 심각한 물 부족에 노출되는 인구도 절반으로 감소한다. 최빈국과 취약계층이 맞닥뜨리게 될 영향을 최소화하는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서도 ‘1.5도 목표’가 절실한 셈이다. 1.5도 목표를 이루려면 2050년까지 탄소배출 ‘순 제로’에 도달해야 한다는 게 IPCC의 분석이다. 또 지금처럼 탄소를 배출한다면 1.5도 상승까지 1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경향신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9월 18일 서울 중구 청계천 광통교에서 ‘9·21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김정근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21년 파리협정체제가 출범한다.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당사국들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이행해도 2100년까지 지구 기온이 3도 넘게 오른다는 예측이 나온다. 내년 말 영국에서 열리는 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온실가스 감축량을 확정하는 자리다. 학계와 시민사회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호소한다. 툰베리가 “집에 불이 붙었는데 가만히 앉아 있지 말라. 나는 사람들이 당황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의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AT)은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매우 불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너무 낮고 이행방법도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이 단체는 2016년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악당’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5억3600만톤으로 잡았다. 그해 배출전망치(BAU)보다 37% 줄인 수치다. CAT는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정부가 약속한 2030년 배출량보다 3억톤 이상 낮은 2억400만톤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목표를 바라보는 각계의 시각은 극명하다. 9월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환경부의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안)’ 공청회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다.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환경부의 규제 강화로 기업들은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2030년까지 37% 감소가 우리에게 맞는 목표냐, 목표 수정을 조심스럽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 참석자들도 기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반면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정부는 일상적인 대책만 나열하고 있다. 과학계가 거듭해서 보이는 메시지와 정치·정책이 담아내는 간극이 크다”며 “기후위기의 화살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강제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은 공청회 현장에서 ‘기후위기 진실을 직시하라’ ‘온실가스 배출제로 추진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최근 대기과학자인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 원장 등 지식인·연구자 664명은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지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탈핵·에너지전환으로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돌린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기후위기 현실에 비춰보면 전환 속도는 느리고 포괄 범위도 제한적”이라며 “기후위기 비상 선언과 장기적인 온실가스 배출 제로 계획의 조속한 수립은 기후위기를 헤쳐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