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고무탄 맞은 인도네시아 기자, 오른쪽 눈 영구 실명
중국은행 ATM·차이나모바일 대리점·중국인 마작장 등 때려 부숴
1일 시위 때 경찰, 시위대 겨냥해 실탄 총 4발 발사…3발은 빗나가
홍콩 언론 "경찰, 국경절 시위 직전 '살상용 무기' 사용규정 완화해"
중국인 소유의 마작장을 때려부수는 홍콩 시위대 |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지난 1일 국경절 시위에서 18세 고등학생이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중상을 입은 사건에 분노한 홍콩 시위대가 중국 기업 점포 등을 공격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여기자가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한쪽 눈이 실명하는 등 홍콩 경찰의 강경 진압에 의한 피해 사건이 잇따르면서 홍콩 시위가 한층 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홍콩 시위대는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췬완, 사틴, 정관오, 웡타이신 등 홍콩 곳곳에서 고교생 피격 사건을 규탄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전날 홍콩 시위대는 경찰의 총격을 '피의 빚'이라고 부르면서 이것을 반드시 갚을 것이라고 다짐한 바 있다.
고교생 피격 사건이 발생한 췬완 지역에서는 시위대가 중국은행이 운영하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때려 부쉈으며, 중국 이동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中國移動) 대리점도 공격해 기물 등을 훼손했다.
시위대는 중국인 소유의 마작장도 공격해 내부 시설을 완전히 때려 부쉈으며, 지하철역 곳곳에는 홍콩 경찰을 비판하는 구호 등을 적어놓았다. 이들은 췬완 지역의 도로를 막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우리 아이들에게 총을 쏘지 마세요'(Don't shoot our kids)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사틴 지역에서는 시위대가 지하철역 내 교통카드 충전기 등을 망가뜨렸으며, 뉴타운플라자 쇼핑몰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웡타이신 역에서는 시위대가 소화전을 부수는 바람에 역내에 물이 넘치기도 했다.
시위대는 신계(新界) 남부 지역 경찰본부에 몰려가 화염병을 던졌으며, 경찰은 이에 맞서 최루탄 등을 발사했다.
전날 밤 시위가 발생한 홍콩 곳곳의 여러 지하철역은 평소보다 일찍 폐쇄됐다.
이에 앞서 전날 오후에는 홍콩 도심인 센트럴과 애드머럴티 등에서 경찰 규탄 시위가 벌어졌으며, 홍콩 내 12개 중고등 학교 학생들은 동맹휴학(罷課)과 비협조 운동을 추진할 것을 결의했다.
이날 저녁에도 사틴, 타이쿠 등 홍콩 시내 곳곳에서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사틴 지역의 뉴타운플라자 쇼핑몰에서는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모여 시위 주제가 '홍콩을 영광을' 등을 부르면서 경찰의 고등학생 총격을 규탄했다.
이들은 기존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에 더해 '경찰 해체'를 6번째 요구 사항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타이쿠 지하철역과 인근 도로, 시티플라자 쇼핑몰에서도 수백 명의 시민들이 경찰을 "살인범", "악랄한 경찰" 등이라고 부르면서 피격 사건을 규탄했고, 이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이날 홍콩 공공의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경찰이 시위자에게 실탄을 쏴서 중상을 입힌 것은 과도한 무력 사용이라고 규탄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총을 쏘지 마세요' 팻말을 든 홍콩 시위대 |
시위대의 분노를 더욱 키운 것은 지난 1일 시위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수차례 실탄을 발사했다는 사실과,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인도네시아 여기자가 영구 실명에 처하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당초 1일 시위에서 경찰은 고등학생을 쏜 1발을 포함해 경고사격 5발 등 총 6발의 실탄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당초 경고사격으로 알려진 5발 중 3발이 실은 시위대를 겨냥해 발사된 것이었다.
췬완 지역에서 경찰은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를 향해 실탄 2발을 발사했으며, 웡타이신 지역에서도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에 실탄 1발을 발사했다. 다행히 이들 실탄은 시위대를 빗겨 갔다.
야우마테이 지역에서 발사된 실탄 2발만 시위대가 아닌, 공중을 향해 발사된 경고사격이었다.
이는 자칫 잘못했으면 피격된 고등학생 외에 추가 사상자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어서 충격을 던져준다.
더구나 국경절 시위 전날 밤 경찰이 '경찰 행동 준칙'을 개정해 살상용 무기의 사용 규정을 완화했다고 '홍콩 프리 프레스'는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기존 규정은 '공격자가 사망 또는 심각한 부상을 일으키려고 하는 의도가 있을 때' 경찰이 살상용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사망 또는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것 같은 공격에 직면했을 때'로 바뀌었다. 경찰이 공격자의 '의도'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살상용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오른쪽 눈이 실명한 인도네시아 여기자 |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가 경찰이 쏜 고무탄에 오른쪽 눈을 맞은 인도네시아 여기자는 영구 실명에 처하게 됐다.
지난달 29일 완차이 지역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수아라 홍콩 뉴스' 신문의 인도네시아인 여성 기자 베비 인다(39)는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오른쪽 눈을 심하게 다쳤다.
당시 그는 헬멧과 고글을 쓰고 다른 기자들과 함께 육교 위에 서 있다가 한 기자가 "쏘지 말아요. 우린 언론인이에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경찰은 고무탄을 발사했고, 인다 기자는 이를 맞고 쓰러졌다.
홍콩 시위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노란 헬멧과 'PRESS'라고 커다랗게 쓰인 노란 조끼를 입고 있어 멀리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오른쪽 눈과 이마가 크게 부풀어 오른 그는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전날 인다 기자의 변호인은 "의료진에게서 오른쪽 눈의 동공이 파열돼 영구 실명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경찰에 진상 조사와 가해 경찰과 관련된 정보를 요구하는 형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초 경찰이 쏜 빈백건(bean bag gun·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에 맞았다는 추정도 있었으나, 고무탄에 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인다 기자의 변호인은 홍콩 경찰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 소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인한 피해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홍콩 시위가 더욱 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규모 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도해온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성명을 내고 "10월 1일은 정권이 실탄으로 학생을 진압하고, 홍콩인들을 철저히 적으로 선언한 날"이라며 대규모 시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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