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손잡아봐도 되냐"… 프로파일러 "조사 마무리하고 악수나 하자"
라포르 형성의 정점 찍은 '악수'…침착·능숙한 대응 눈길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이춘재 |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 '추격자'에서 범인 '지영민'은 검거된 뒤 자신을 조사하던 여형사에게 능청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여형사는 "입 다물라"라고 거칠게 대응하지만 연이은 지영민의 도발에 결국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조사는 별다른 소득 없이 마무리된다.
5일 경찰 등에 따르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 씨도 화성사건을 포함해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하기 전 프로파일러를 상대로 비슷한 '도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와 달리 현실의 프로파일러는 침착하고도 능숙하게 대처해 오히려 이 씨로부터 자백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씨는 지난달 24∼27일까지 부산교도소에서 이뤄진 4∼7차 대면조사에서 처음 입을 열었다. 그전까지는 형사와 프로파일러의 질문에 대체로 답을 하지 않으며 사실상 화성사건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런데도 '라포르'(신뢰관계) 형성을 포기하지 않던 수사팀을 상대로 마침내 이 씨가 입을 열었다.
이 씨는 전국에서 차출돼 이 사건에 투입된 프로파일러 9명 가운데 한 여성 프로파일러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손이 참 이쁘시네요"라고 말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어 "손 좀 잡아봐도 돼요?"라고 물었다. 질문을 듣기만 하던 그가 역공에 나선 셈이다.
프로파일러는 당황하는 대신 "조사가 마무리되면 악수나 하자"고 응수했다.
이 씨의 요구를 거절하면서도 공적 관계에서 이뤄지는 형식적인 인사인 악수를 내세워 이 씨에게 입을 열 여지를 열어줬다.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이춘재 |
이에 화성사건 가운데 5, 7, 9차 사건 증거물에서 자신의 DNA가 나왔다는 사실을 듣고도 한동안 침묵하던 이 씨는 "DNA 증거도 나왔다고 하니 어쩔 수 없네요"라며 결국 그동안 저지른 악행을 털어놨다.
그는 자백하면서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와 내가 한 짓이 드러날 줄 알았다"라고 하는 등 프로파일러에게 도발할 때처럼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담담하게, 때로는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신의 범행을 설명했다.
이처럼 이 씨의 자백을 끌어낸 경찰의 대면조사는 지난달 18일부터 시작됐다.
이날은 5차 사건 증거물에서 이 씨의 DNA가 검출된 날이자 경찰이 화성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이 씨를 특정한 사실이 언론 보도로 처음 알려진 날이다.
애초 경찰은 나머지 사건 증거물에 대한 DNA 분석 결과 등 이 씨가 혐의를 부인하지 못할 증거를 더 확보한 뒤 이 씨를 대면조사 하려고 했지만, 이 씨가 유력한 용의자라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이날 급하게 처음 이 씨를 접견했다.
계획이 다소 틀어졌지만, 경찰은 1차 조사 때부터 현재까지 17일 사이에 10차례에 걸쳐 이 씨를 조사했고 마침내 이 씨의 입을 여는 데 성공했다.
[그래픽] 숫자로 본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
이 씨는 화성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충북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한편 그는 자백 과정에서 범인이 검거돼 모방범죄 혹은 별개의 범죄로 여겨진 화성사건의 8차 사건까지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해 경찰이 과거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신빙성을 검증하고 있다.
zorb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