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단체 주도 아닌 시민들이 스스로 앞장
전문가들 "일시적 현상 넘어 소비패턴 변화"
日 맥주 수입 사실상 중단·日車 판매도 급감
2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02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 위한 정기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 이지은 기자, 김봉기 기자]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에 맞선 '노 재팬'이 100일을 맞은 가운데 일본 불매운동이 장기화되고 있다.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예전의 불매운동은 몇몇 시민단체가 먼저 주도했다면, 이번 불매운동은 네티즌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지적했을만큼 과거 한국과 일본 간 정치ㆍ외교적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특정 단체가 주도했다 식어버렸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국민들 자발적으로 '안사고, 안팔고, 안먹고, 안가는' 불매운동이 이뤄지면서 일본 제품 브랜드들은 한국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불매운동이 과거와 질적으로 달리 소비자들이 소비 패턴 자체를 바꾸고 있다며 이같은 경향이 고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4일 일본이 한국 반도체 재료 등의 수출규제를 강화한 이후 국내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일본 브랜드는 맥주와 자동차, 의류 등이다. 관세청 조사 결과 9월(잠정치) 일본맥주 수입액은 6000달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9.9% 급감한 수준이다. 수입 국가별 순위도 1위에서 28위로 추락했다. 편의점 관계자는 "일본맥주에 대한 '4캔에 1만원' 프로모션을 없앤 이후 팔리는 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맥주 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 제품들도 모두 매출이 빠진 지 오래"라고 귀띔했다.
일본 자동차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달 일본계 브랜드(도요타ㆍ렉서스ㆍ혼다ㆍ닛산ㆍ인피니티)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는 1103대다. 전년 동기(2744대)보다 59.8% 줄었다. 이는 2009년 8월(973대) 이후 10년 1개월 만에 최저치다. 이로써 일본계 브랜드 점유율은 지난해 9월 15.9%에서 1년 만에 5.5%까지 쪼그라들었다.
국내에서 승승장구했던 일본 대표 패션브랜드인 유니클로는 불매운동이 전개된 7월 이후 4개점이 폐점했다. 매출도 급감했다. 8개 카드사의 유니클로 6월 마지막주 매출액은 59억4000만원. 한달 뒤인 7월 넷째 주에는 17억7000만원으로 70.1%까지 떨어졌다. 브랜드가치도 미끄러졌다. 브랜드스탁이 발표한 올해 3분기 대한민국 100대 브랜드'에서 99위까지 추락했다.
일본 여행 보이콧은 더욱 도드라진다. 티몬에 따르면 여름 휴가철이자 해외여행 성수기였던 지난 8~9월의 일본행 항공권 발권 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78% 급감했다. 대마도행 페리 승선권 매출은 92%나 줄어 사실상 실적이 없는 수준이었다.
위메프가 분석한 지난 추석 연휴 기간의 항공권 예약 실적을 보면 일본으로 가는 항공권 예매 비중은 지난해 추석 연휴에 대비해 64% 줄었다.지난 6월 4주차에 위메프에서 일본행 항공권 예약을 취소하고 환불을 받은 비중은 9%에 불과했으나 보이콧이 본격화한 7월 1주차에는 15%로, 2주차에는 36%로, 3주차에는 44%로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불매운동이 기존과 가장 다른 점으로 1990년대 생 등 젊은 세대의 SNS를 바탕에 둔 공유문화를 요인으로 꼽았다. SNS를 통한 자발적 불매운동이 확산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은 "과거 불매운동은 정부 또는 50대 이상 고연령층과 기득권의 주도로 일어나 금방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은 주도 연령이 젊어졌고 SNS 등을 통해 참여 사실을 인증하는 등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이는 구조적인 변화로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조춘한 경기과학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도 "이전 불매운동과 질적으로 다른 점은 사람들이 소비패턴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일본 제품 관련 정보를 활발하게 공유하고, 확인되면 아예 안 사는 식으로 소비의 경향이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산품의 품질 상승도 불매운동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최근 한국 제품의 품질이 일본산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상향되면서 생활패턴 자체가 변화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2000년대만 해도 젊은 세대가 일본에 다녀오면서 '크게 배울 것이 없다'는 수준이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는 '우리나라보다 못하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었다"며 "고연령층에게 일본은 경이로운 벤치마킹의 대상이었지만, 젊은 세대에게 일본은 '디지털 혁명이 뒤처진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불매운동을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주도한 만큼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소비자들이 이제는 한국 제품도 쓸만하다고 생각하니 굳이 일본 제품을 다시 선택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불매운동을 주도하는 연령이 젊어졌고 SNS 등을 통해 불매운동에 참여한 사실을 인증하는 등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일본 불매는 이제 구조적인 변화로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김봉기 기자 superch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