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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 최성재 서울대 명예교수의 100세 시대 생애설계 ] 왜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고 있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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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평균수명이 계속 연장되는 추세는 장수의 가능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수는 인류의 가장 큰 소원이다. 인류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사회복지 제도 등을 만들어 사회를 발전시켜 온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는 장수의 축복을 누리기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 사회적 노력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어 100세까지의 장수 가능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인류사회의 가장 큰 소원을 이루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수는 인류사회 발전의 위대한 결과이며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이 급속히 연장되면서 지난 10여년 사이 재무적(경제적) 측면에서 노후설계나 은퇴설계를 말하는 사람들은 “장수 리스크”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장수를 “위험(risk)”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장수 리스크는 장수하게 됨에 따라 충분한 노후자금을 준비하지 못해 발생하는 경제적 어려움에 초점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장수는 인생의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 행복을 위협하는 요인이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인류사회가 추구해 온 장수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수사회에서 장수가 위험과 재앙이 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왜 장수가 그렇게 위험요인이 되고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크게 4가지로 말할 수 있다.

장수를 위험으로 보는 첫째 이유는 노후생활의 어려움이다. 우리보다 발전된 선진국 경우는 좀 다르지만 우리나라 경우 평균수명은 계속 연장되고 있으나 현재 60세 이후 긴 여생을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네 가지의 어려움(사고[四苦]라고 말하기도 함)에 봉착하고 있다. 이 네 가지 어려움은 (1) 경제적 어려움, (2) 할 일이 없는 어려움, (3) 건강 유지/보호의 어려움, (4) 고독과 소외의 어려움이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세대들은 공적연금(국가제도에 의한 연금으로 국민연금 등) 가입률이 낮고 별도의 노후자금도 준비하지 못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5% 정도에 이르고, 공적연금을 받고 있는 비율은 46% 정도에 연금액도 월 평균 57만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통계청, 2018).

60세 이후 고령자는 말할 필요도 없고 50대에만 들어서도 재취업의 기회를 찾기 어렵고, 적합한 사회적 역할도 없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가운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노인들이 건강이 약해지는 가운데 다양한 만성 질병과 장애로 돌봄을 받으면서 오래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7년 현재 건강이 좋지 않다(주관적 판단)는 노인은 40%나 되고, 만성질환이 있는 노인은 90%에 이르고 있다(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

자녀와 별거율이 70%(2018년 현재)를 넘는 가운데 가족 및 친지와의 만남도 여의치 않고, 만나서 이야기 하고 즐길 수 있는 이웃, 친구나 활동을 같이 하는 동료도 줄어들어 소외감과 고독감이 깊어지고 자존감도 손상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4가지 어려움은 개인에 따른 차이가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당장 해결되기는 어렵고 해결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장수를 위험으로 보는 둘째 이유는 연령주의다. 노화(老化; 나이 들어감)와 노인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것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현상을 연령주의(ageism)라 한다. 이 연령주의는 우리사회에 널리 그리고 깊이 스며들어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노인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이리하여 생산성과 창의성을 나이로 판단하고 차별하는 경향이 두드려지게 나타나고 있다. 젊은이들은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고 60세 이후 30-40년을 더 살게 될 텐데 장래의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모르고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학력과 정치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지위가 높은 노년층 사람들은 나이가 70, 80세 이상이 되어도 자신들은 능력 있고 생산성과 창의력도 있기 때문에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60세만 되어도 노인으로 보고 연령적으로 동료의식을 거의 가지지 못하고 노인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문제라 생각하고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연령주의는 사실과 크게 다르고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지만 개선이 쉽지 않다.

장수를 위험으로 보는 셋째 이유는 장수로 인한 사회적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수의 의미와 결과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못하고, 나이가 많아 생산 활동을 못하는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되면 사회에 부담을 안겨줄 것이라 생각한다. 일찍이 고령화를 경험한 선진국에서는 노인들이 많아지는 것을 가리켜 “피할 수 없는 재앙”, “인구 지진”, “인구의 시한폭탄”, “거대한 빚더미”라는 등으로 부정적 표현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경우가 많았다(Williamson 외, 1999). 따라서 사람들은 장수로 인해 부담이 증가하는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노인이 많아지는 사회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노인들의 어려움 해결에 적극적이지 못하며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한 숙제로 남아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부담은 평균수명 연장으로 노인인구가 크게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저출산 현상까지 겹쳐 더욱 커지게 될 가능성도 있다. 결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결혼해도 자녀를 낳지 않거나, 자녀를 낳아도 한 명 이상은 낳지 않으려 하는 저출산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주 심각한 상태이다. 우리나라 2018년 출산율(합계출산율: 15-49세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출산하는 평균아동 수)은 0.98명이었다. 현재와 같은 인구수를 유지하려면 출산율은 2.3명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출산율이 1명도 못 되니 전체 인구가 계속 줄어들게 될 것이다.

출생아 수가 줄어들면 앞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 수가 줄어들게 된다. 일할 수 있는 인구를 15-64세로 보고 이를 “생산가능인구”라 한다. 평균수명 연장(개인 고령화)으로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늘어나는 반면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게 되면 생산가능인구가 노인을 부양하기 위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의 경제적 부담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부담 때문에 세대 간 갈등도 나타날 수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사회는 고령화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인복지 예산이나 공적연금에 대한 국가지원을 줄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장수를 위험으로 보는 넷째 이유는 젊은이들(주로 40-50세 이하 연령층)의 장수의 의미와 결과에 대한 이해와 대책이 부족한 것이다.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에는 그저 장수하기만 바랄 뿐 장수의 의미나 결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중년기 들어 성인병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신체적 및 정신적 측면에서 노화를 느끼거나 의식하면서 장수의 의미를 점점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젊을 때는 “노후는 먼 훗날 일”이라 생각하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한 “나는 늙지 않고 오래 청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와 환상에 젖어 노후를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노년기에 도달하면 노년기 30-40년의 긴 시간을 대비하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고 엄청난 부담을 느끼게 된다.

[최성재 - (사)한국생애설계협회 회장/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제노년학·노인의학회(IAGG) UN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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