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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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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대사님] "40조원 규모 新수도 건설, 한국 기업에 좋은 기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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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만난 한국인 의류·직물 회사 대표 중 ‘바틱(Batik·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을 입지 않은 사람을 못 봤다. 그 만큼 현지화가 잘됐다는 이야기다. 약 5만명을 헤아리는 인도네시아의 한인 중에는 1970년대에 건너와 중소기업을 일구며 현지 기업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들이 많다.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인구 2억7000만명(세계 4위), 국내총생산 1조422억달러(세계 17위)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최대 시장인 인도네시아가 우리와 부쩍 가까워졌다. 지난 16일 "한-인도네시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협상이 타결되면서 한국은 수입품목 중 95.5%(기존 90.2%), 인도네시아는 93.0%(기존 80.1%)의 관세 철폐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한-인도네시아 CEPA는 올해 안에 최종 타결을 마무리 짓고 내년 상반기 국회 비준을 마치면 발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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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르 하디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18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인도네시아 시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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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의 주요수출 품목인 철강과 자동차 및 부품, 합성수지 등에 적용되던 5~15%의 관세를 발효 즉시 철폐하기로 한 것이 고무적이다. 서비스 시장 개방 폭도 넓어지면서 온라인게임과 유통산업, 건설 서비스 분야의 인도네시아 진출이 늘어날 전망이다. 수입 품목에서는 인도네시아 수출 주요 품목인 경유, 벙커씨유, 원당 등의 관세가 즉시 철폐되고 정밀화학원료, 맥주 등의 관세가 단계별로 사라진다.

18일 저녁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기자와 만난 우마르 하디(UMAR HADI)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는 "한-인도네시아 CEPA는 2007년 체결된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과 연내 타결을 추진 중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을 통한 협력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도 "무역의존도가 70%에 달하는 한국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내수 비중이 40%가 넘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현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막연한 기대를 경계했다.

RCEP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인도, 뉴질랜드 등 모두 16개국이 참여하는 초대형 자유무역협정이다.

올해 51세인 하디 대사는 인도네시아 서부 자바주의 명문 국립대학인 파자자란대와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 외교법률대학원을 졸업했다. 2017년 한국 부임에 앞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와 인도네시아 외교부 서유럽 담당 국장 등을 지냈다. 발리 전통악기 '가믈란'을 다룬 영화 '발리:천상의 울림(Bali : Beats of Paradise)'을 직접 제작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발리:천상의 울림’은 미국 뉴욕과 LA에 이어 지난 4월에는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시장에서도 화교(華僑) 자본과 일본 기업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한국 기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분야마다 상황이 다르다. 예를 들어 의류·직물 분야는 한국 기업이 지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면적이 매우 크고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 많기 때문에 좋은 현지 파트너와 제휴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1~2년 안에 승부를 보겠다’는 조급한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최소한 25년 앞을 내다보고 움직여야 한다. 동남아 전역에서 한류 열풍이 뜨거운 만큼 한국 기업에 유리한 점이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화교 인구는 4%에 지나지 않지만 경제의 80%를 지배하고 있으며 매출 상위 20대 기업 중 18개(2017년 기준)가 화교기업일 정도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은 일본계 브랜드가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한국차 점유율은 0.16%, 연 1000여대에 불과하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네시아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과거사의 아픈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일본은 1970년대 들어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와 투자를 크게 늘리면서 이미지 전환에 성공했다. 과거의 아픔 속에서도 새롭게 시작할 여지는 늘 있다. 당시 일본의 전략에는 한국이 참고할 만한 부분도 있다고 본다."

1977년 후쿠다 다케오 당시 일본 총리는 동남아 6개국 순방의 마지막 국가였던 필리핀에서 "일본은 군사 대국이 되지 않을 것이며 아세안 회원국들과 정치·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마음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정한 친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은 이 같은 내용의 '후쿠다 독트린’을 바탕으로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투자와 원조를 크게 늘렸고 대중음악과 애니메이션, 패션 등 '소프트 파워'로 동남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류 관련 부분을 빼면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한국만의 독특한 경쟁력이 있을까.
"인도네시아가 1970년대 시장 개방을 시작했을때 일본과 미국, 유럽 국가들은 대기업을 앞세워 진출을 모색했다. 반면 한국은 중소기업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당시 인도네시아에 정착한 한국인 중소기업 오너 중에는 적극적인 현지화로 사업에 성공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현지 네트워크와 경험은 활용 여하에 따라 신규 진출하는 한국 기업에 큰 자산이 될 수도 있다."

현지 채용을 늘리는 것이 현지화의 핵심인가.
"그것만은 아니다. 현지 시장에 특화된 사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의 라면 전문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한국에서 만든 라면을 수출하겠지만, 사업을 더 키우려면 현지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연구개발(R&D) 비중을 늘리고, 그 결과에 따라 현지 제조 공장을 설립하는 등 차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지 직원 교육도 중요하다. ‘장기적인 안목'이 있어야 현지화도 성공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진출 한국 대기업 중 현지화 성공 사례를 꼽는다면.
"언젠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만났을 때 그가 내게 ‘롯데 인도네시아를 한국 기업이 아닌 인도네시아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바람직한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롯데는 인도네시아에 16개 사업 부문이 진출해 있다. 롯데마트는 최근 인도네시아 동부에 37번째 매장을 오픈하는 등 잘나가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업은 롯데 사업 전체에 이미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롯데와 인도네시아 경제에 모두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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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 롯데쇼핑 에비뉴 건물.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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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가 추진 중인 수도 이전 계획에 한국 건설사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길까.
"물론이다. 한국 건설사들의 활약은 자카르타 경전철 프로젝트 등 최근 몇년 간 인도네시아의 주요 인프라 건설 사업에서 두드러졌다. 한국은 행정수도 이전 경험도 있지 않나. 세종시에 가봤는데 주변에 녹지가 많고 건물들도 ‘스마트 기술'을 접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 8월 26일 현재 수도인 자카르타와 약 1400km 떨어진 보르네오섬의 동(東) 칼라만탄에 새 수도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카르타의 만성적인 대기오염과 교통체증으로 오랫 동안 골머리를 앓아왔다. 지난 6월에는 대기오염에 참다못한 시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까지 제기하기도 했다. 여기에 지하수의 과도한 사용과 고층 건물 급증으로 지반 침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수도 이전이 시급해졌다. 신행정수도 건설비용은 약 466조루피아(약 39조원)로 추정된다.

한-인도네시아 협력이 특별히 유망한 산업 분야를 꼽는다면.
"조선 분야가 특히 잘 맞을 것 같다. 한국은 세계적인 조선 강국인데, 요즘 조선 경기가 좋지 않다. 제조 설비 일부를 인도네시아로 옮기면 (인건비 절감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북한과도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경제적 번영과 비핵화를 늘 지지해 왔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역할을 할 것이다."

[이용성 조선비즈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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