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6 (월)

4세대 유전자기술 `프라임 에디터`…유전병 90% 치료 길 열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글자를 쓰고 지우는 것처럼 인체 DNA 유전코드를 하나하나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차세대 유전자 교정 기술이 탄생했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현존하는 유전질환 중 90%를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전자 교정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데이비드 류 미국 하버드·매사추세츠공대(MIT) 브로드연구소 교수와 연구진은 21일(현지시간) DNA에서 유전코드를 구성하는 특정 염기나 염기서열을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정밀하게 교정할 수 있는 '프라임 에디터'를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밝혔다.

이 유전자 교정 기술은 DNA에서 원하는 유전자만 선택적으로 잘라내 유전자를 교정하는 기존 3세대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 가위보다 정확하고 정밀하게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각종 난치성 유전질환 치료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은 물론, 동식물 품종 개량에도 널리 활용될 수 있다.

류 교수는 이날 네이처 주관 언론 브리핑에서 "과거 '크리스퍼'가 유전자 가위이고 '염기 교정'이 연필이었다면 '프라임 에디터'는 유전자 워드프로세서"라며 "적용 범위가 이전보다 넓어 현존 7만5000종에 달하는 유전질환 중 90%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프라임 에디터를 활용했을 때 컴퓨터로 문서를 편집하듯 아데닌(A)과 티민(T), 시토신(C), 구아닌(G) 등 염기서열로 만들어진 DNA 유전코드를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다. 대다수 유전질환이 단 몇 개 염기가 바뀌면서 발병한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유전코드 교정을 통해 유전질환 치료 가능성을 대폭 높일 수 있다.

유전코드를 교정해 고칠 수 있게 된 대표적인 질환이 겸상적혈구빈혈증이다. 겸상적혈구빈혈증은 특정 A 염기 하나가 T로 바뀌었을 때 발병한다. 치명적인 신경계 질환인 테이삭스병도 마찬가지다. 테이삭스병은 단 4개 염기가 DNA에 잘못 삽입될 때 나타나는 질환이다.

프라임 에디터의 또 다른 장점은 기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사용할 때 나타났던 '표적 이탈' 현상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퍼는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잘라낸 뒤 작동하는 세포의 자연적인 DNA 복구 시스템을 활용해 유전체를 교정한다. 하지만 이런 세포의 DNA 복구 과정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염기서열이 삽입되거나 없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어 크리스퍼 임상 적용에 큰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프라임 에디터는 워드프로세서에서 글자를 쓰고 지울 수 있는 것처럼 DNA 염기서열을 직접 갈아 끼워 넣는 방식으로 교정하기 때문에 정확성이 훨씬 높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프라임 에디터는 표적 부위의 DNA를 이루는 이중 가닥 중 한쪽 가닥만 끊어 여기에 원하는 염기서열을 삽입한다. 기존에 이 부위에 있던 염기서열이 떨어져 나가면 프라임 에디터의 '역전사 효소'(염기가 쌍을 이루도록 DNA 가닥을 만드는 효소)가 삽입된 염기서열의 유전정보를 토대로 다른 한쪽의 DNA 가닥까지 교정한다. DNA 이중 가닥을 모두 자르지 않기 때문에 세포의 DNA 복구 시스템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다만 류 교수는 "프라임 에디터의 분자 크기는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바이러스 등 세포까지 잘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향후 살아 있는 동물에게 프라임 에디터를 주입해 유전자를 교정하는 실험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 교수는 2016년 세계 최초로 DNA에서 특정 염기 하나만 정확하게 바꿀 수 있는 '염기 교정' 기술을 개발해 학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었던 염기 교정의 한계를 극복한 프라임 에디터는 유전체 교정 분야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대단한 성과"라면서도 "유전자 제거 등에는 아직까지 크리스퍼가 좀 더 유용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프라임 에디터가 크리스퍼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두 기술이 함께 쓰일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네이처는 이번 연구 성과의 독창성과 사회적 파급력 등을 고려해 이례적으로 연구진의 '프리뷰 논문'을 공개했다. 정식 논문은 오는 28일자 네이처 온라인판에 게재될 예정이다.

[송경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