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와 가사도우미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피소된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2년여 만에 입국해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미국에서 질병 치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경찰 출석을 거부해 온 김 전 회장은 줄곧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 만큼 향후 조사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23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예정인 김 전 회장을 입국 직후 체포해 조사할 방침이다.

앞서 김 전 회장은 2017년 9월 자신의 비서였던 30대 여성 A씨로부터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A씨는 김 전 회장이 2017년 2월부터 7월까지 상습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만졌다며 추행 상황을 찍은 영상 등을 경찰에 제출했다.

김 전 회장은 A씨가 자신을 고소하기 두 달 전쯤인 2017년 7월 질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난 이후 국내 입국을 미뤄왔다. 경찰은 고소장을 접수한 이후 김 전 회장에게 세 차례에 걸쳐 출석을 요구했지만, 김 전 회장 측은 치료를 이유로 출석할 수 없다는 내용의 불출석 사유서 등을 제출하며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후 강제 수사에 돌입한 경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외교부를 통해 김 전 회장의 여권을 무효화하는 조치 등을 취했지만, 김 전 회장은 질병 치료를 이유로 체류연장신청서를 갱신하면서 미국에서의 체류 기간을 늘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의 성폭력 관련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6년부터 1년여간 김 전 회장의 별장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한 B씨는 김 전 회장으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며 2018년 1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지난 7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B씨의 자녀라고 밝힌 청원자가 ‘김 전 회장이 어머니를 수차례 성폭행했다’는 내용의 청원을 올리면서 다시 한 번 논란이 됐다.

한편 김 전 회장은 자신의 혐의들을 줄곧 부인해왔다. A씨의 고소 이후 김 전 회장 측은 “일부 신체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합의했던 것으로 강제성이 없었다”고 해명했고, 지난 7월에는 B씨의 고소와 관련해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며 “주치의의 허락을 받는 대로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DB그룹의 창업자이자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장남인 김 전 회장은 사실상 마지막 ‘1세대 재벌총수’로 불리며 2017년 초까지 직접 기업 운영을 이끌었으나,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면서 같은 해 9월 DB그룹 회장직과 계열사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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