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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문병로의 알고리즘 여행] 예측과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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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물리적 현상이 아닌 사회·경제 분야의 대부분 예측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결과다. 인류의 역사는 주먹구구식 땜질들로 점철된 잡음 투성이의 역사다. 대표적인 곳이 주식시장이다.

리먼브러더스의 애널리스트 일레인 가자렐리는 1987년 다우존스 공업지수가 2641포인트일 때 대폭락의 임박을 예측한다. 나흘 후에 지수가 1739포인트까지 빠지는 대폭락이 발생한다. 그녀는 ‘세기의 예측가’라는 찬사를 듣는다. 우쭐해진 그녀는 지수가 1939포인트로 반등하자 1000 내지 1500까지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다시 예측한다. 이후 두세달 동안 지수가 꾸준히 상승하자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내가 분석한 지표에 따르면 최근에서야 상승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예측을 번복한다. 그녀의 명성에 힘입어 규모를 키웠던 가자렐리 펀드는 저조한 성적을 거듭하다 1994년 폐쇄된다.

주식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캔들 차트라는 것이 있다. 매일의 시가·종가·고가·저가를 그림으로 나열하는 차트다. 일본에서 시작되어 이 차트상의 상승 패턴과 하락 패턴들이 전해져왔다. G. 모리스가 유명한 88개의 상승-하락 캔들 패턴에 대해 조사했더니 적중률 평균이 51%였다. 눈감고 찍는 것보다 1% 포인트 좋은 적중률이다. 이 산술평균 51%는 반복투자하면 거래 비용을 감안하지 않고도 손실이 나는 수치다.

중앙일보

알고리즘 10/23


알고리즘 투자 회사를 운영하는 필자가 계량적 주식투자에 대한 강연을 하면 전문가 비전문가를 가리지 않고 하는 질문이 있다. “환란이나 금융 위기와 같은 위기의 초기에 위험을 감지해서 손실을 줄이는 전략을 포함하고 있습니까?” 필자는 대답한다.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전략은 같이 당하는 겁니다.” 결정적인 수익은 짧은 기간에 나기 때문에 손실을 피하겠다고 시장에 들락거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장기 투자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 결정적인 수익의 기간에 시장에서 빠져있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의 많은 구루들이 항상 시장에 속해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드레먼밸류매니지먼트 회장 데이빗 드레먼에 의하면 미국 애널리스트들의 당기 순익 예측치는 평균 44%의 오차를 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유명 경제학자들의 6개월 후 금리 예측치를 13년반 동안 추적한 결과 27번 중 20번이나 방향이 틀렸다. 44%나 틀리는 예측치와 75%나 방향이 틀리는 예측치를 사용해서 무슨 투자 모델을 만들 수 있겠는가? 처칠이 말했다. “위대한 정치가란 10년 앞을 예측하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자질은 10년 뒤에 그것이 왜 틀렸는지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이다.”

오늘도 수많은 투자 주체들이 내일의 등락을 알아맞히려고 매진하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 단기적 움직임은 합리적이지 않다. 단기적 움직임을 알아맞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기는 정말 힘들다. 내일의 주가를 맞추겠다거나 다음 달의 지수를 맞추겠다는 것은 시장의 변덕을 예측하겠다는 순진한 짓이다. 주식 시장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대응의 영역이다. 예측으로 시장을 이기려 하면 장기적으로 취약해진다. 인체는 스트레스를 통해 더 강건해지고, 제대로 된 투자는 시장에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면서 잔고가 살찐다. 예측은 겸손해야 한다. 건강한 투자는 세상의 무작위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확률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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