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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김준의 맛과 섬] [1] 할머니는 4등분, 아버지는 6등분, 난 작은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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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용왕님, 너울너울 김발에 포자도 잘 붙어 올해 김 농사 풍년 들게 해주세요.”

10월 가을의 전북 고창 만돌마을. 풍년 기원제에 나온 한 어머니가 서해 용왕님에게 비손하며 큰절을 올렸다. 마을에 굴뚝 만 개가 솟아 흥할 곳이라 '만돌'이라는데, 굴뚝 대신 갯벌에 꽂은 김발을 맬 지주가 만 개는 될 것 같다.〈사진〉 기원제가 끝나고 김발 실은 경운기가 바다로 향했다. 갯벌을 지나 앞바퀴가 잠길 정도까지…. 바닷물이 허리춤을 넘어 가슴까지 올라왔다. 그제야 어민들은 김발을 펼치고 줄을 당겨 기둥에 묶었다. 어민의 정성과 서해 용왕의 음덕으로 열흘 정도 지나면 붉은색 포자가 김발에 엉겨 붙을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지나면 올해 맏물 김을 수확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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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승람'에 김의 주요 생산지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일대 21개 군현에 이른다. '자산어보'에 김을 '자채', 속명은 '짐'이라 했다. 김은 조류 소통이 잘되고 담수가 적당히 유입되는 내만이 적지다. 지금도 낙동강, 영산강, 금강, 한강 등 하구역과 다도해 연안에서 양식을 많이 한다.

만돌마을에서 하는 김 양식을 '지주식'이라 한다. 양식 기술의 발달과 내파성 시설들이 개발되면서 깊은 바다에서도 대규모로 양식하는데 이는 부류식이나 세트식이라고 한다. 만돌의 김 농사도 옛날보다 시설이나 가공 방법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물때에 따라 바다에 잠기고 바람에 씻기고 햇볕에 노출되며 자라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렇게 재래식 김이 만들어진다.

막 구운 김에 흰쌀밥을 올려 조선장에 찍어 먹던 맛이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다. 쌀도 귀하고, 김은 더 귀했던 시절 이야기이다. 명절에 세찬(歲饌)으로 겨우 밥상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김 한 장을 나누는 것도 격식이 있었다. 어른들은 할머니는 4등분, 아버지는 6등분, 그리고 우리는 수저를 덮을 정도로 작게 찢어서 나누어 주었다. 이제 그 김이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수출액이 가장 많아 ‘수산물 한류 1호’라고들 한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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