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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김학주의 아웃룩] 닥터 코퍼 가라사대… 세계 경제 '과도기 함정'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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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하·국채 발행 등 통화·재정 정책, 갈수록 효과 떨어져

'성장보다 분배' 좌파 포퓰리즘 빠지면 '디플레 악순환' 가능성

노·장년층 소비 성향 키우고, 교육·인재 양성에 집중 투자해야

조선일보

김학주 한동대학교 교수


구리의 별명은 닥터 코퍼(Dr. Copper)다. 구리 가격이 웬만한 경제학자들보다 실물경제를 잘 예측한다고 해서 박사 타이틀을 붙여줬다. 구리는 제조업, 건설업 등 구(舊)경제를 대표하는 금속이다. 현재 구리 가격은 파운드당 2.5달러 수준으로 손익분기점 3달러에 못 미친다. 제조업 위주 구경제가 힘을 잃었음을 감안하면 낮은 구리 가격은 이상하지 않다. 한편, 구리는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보급과 함께 수요가 크게 증가할 수 있다. 태양광·풍력 발전은 석유·천연가스를 이용해 전기를 얻는 과정보다 구리 수요가 3~15배 증가한다. 전기차까지 보급되면 구리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구리 가격이 가라앉아 있는 이유는 전기차를 비롯한 신(新)경제의 도래가 더디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전기차를 보급해 자동차 공유경제를 확산시키면 소비자들의 가처분소득이 늘 수 있으나 고용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기존 자동차 업계가 치명타를 입게 된다. 즉 늙어가는 구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신경제를 불러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과도기에 빠져 세계경제는 더 신음하고 있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각국 정부는 비정상적인 부양 정책을 써 왔다. 먼저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려 서민과 기업들의 빚 부담을 줄여 줬다. 덕분에 처음에는 소비가 느는 것 같더니 지금은 그런 통화정책의 약효가 떨어졌다. 시중에 풀린 돈 때문에 투자수익률이 만성적으로 낮아졌다는 것을 감지한 이후 사람들은 노후를 위해 저축을 더 늘려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조차도 투자 심리를 나타내는 ISM지수가 경기 위축을 나타내는 50 밑으로 내려앉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직접 지출로 민간투자 위축을 상쇄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조심할 것이 있다. 중앙은행은 그동안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시장의 국채를 사들였다. 그만큼 시중에 돈이 풀렸다. 그런데 정부는 빚을 함부로 늘릴 수 없기 때문에 국채 신규 발행에 신중했다. 그 결과 국채 품귀 현상이 나타났고, 채권 가격은 급등했다. 세계적으로 마이너스 금리 채권 비중이 15%까지 늘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가 상승을 견인한 것도 자사주 매입 소각 또는 M&A에 따른 주식 유통 물량 축소다. 지금까지 증시 상승을 견인한 원동력은 기업의 펀더멘털보다 수급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투자를 위해 급하게 국채 발행을 늘릴 경우 국채 가격이 급락할 수 있다. 시중금리는 급등할 것이다. 빚에 중독되어 있는 서민이나 기업들이 이를 버텨낼 수 있을까? 금리가 상승하면 이자 부담 때문에 기업들도 그동안 사놓았던 자사주를 팔아 부채를 갚을 것이다. 주가도 매물 압력을 받으며 떨어진다. 이는 금융기관을 파괴하고, 경제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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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통화와 재정 정책의 '약발'이 시들해지면 각국 정부는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부자들 돈을 빼앗아 경제 발전에도 쓰고 서민들에게 나눠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부의 재분배를 강조하는 좌파가 득세하는 경향이다. 최근 미국에선 엘리자베스 워런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지지율 1위로 부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녀는 증시의 주주 중심 체제를 부정한다. 종업원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배분해야 하며, 이사회 의결권 중 40%를 종업원에게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이 현실화한다면 주주들은 주식을 팔 것이다. 자산 가격 하락은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디플레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이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다. 워런은 최저임금도 현재 7.2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을 추진 중이다. 미국 평균 임금의 3분의 2 수준으로 올리자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사례처럼 능력 없는 젊은이들의 직업을 빼앗을 것이다. 더 걱정되는 부분은 이런 인건비 상승 압력이 기업들의 채산성을 직접 훼손한다는 것이다. 곧 손을 드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도 분배를 강조한다. 틀린 생각이다. 소득이 없어 소비를 못 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은퇴 후 소비를 줄이기 때문이다. 또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배당이 적다고 불평하는데 오히려 기업이 배당을 늘리고,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부의 불균형을 조장한다. 주식을 가진 자산가들만 이익을 누리고, 일자리는 줄기 때문이다.

이런 난국에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두 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 노인들이 소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들에게 직업을 줘야 한다. 은퇴한 분들 가운데 역량을 가진 분도 많다. 새롭게 탄생한 젊은 스타트업(start-up)들은 이런 베테랑의 훈수가 필요하다. 이들을 잘 연결하는 플랫폼을 정부가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진짜 돈을 써야 할 곳은 단기 알바식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바로 이런 곳이다. 최근 등장한 5G 통신망은 훌륭한 인프라를 제공할 것이다.

둘째, 정부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다.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한다고 학생들을 덜 공부시키는 역주행은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역량 있는 인재 육성에 투자해야 한다. 한국의 자원은 사람밖에 없다. 세계 교역이 감소하며 수출 기회도 줄고 있다. 대신 선진국은 인구 노령화로 사람을 찾고 있다. 제품 대신 사람을 보낼 기회가 더 확대될 것이다. 최근 신흥국들의 해외 인력 송금 수입이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를 넘어선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해외로 진출해야 하는 때가 온 것 같다.

[김학주 한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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