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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왜냐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농성을 벌이며 / 김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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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지난 22일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의원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청와대 앞에서 진행 중인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농성’에 대해 질의했다. ‘복지부의 현재 계획이 생계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는데 사실이냐’는 내용이었다. 박 장관은 ‘그렇지 않다’며 일부 사람들에게는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계획도 있다고 답변했다. 남 의원은 ‘오해의 소지가 없게 잘 설명’해야 한다고 질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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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얘기다.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는 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가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바로 이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때 가족들에게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게 하는 조항이다. 1999년에 만들어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제정 초기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전국 약 90만명의 절대빈곤층은 이 조항으로 인해 빈곤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고, 농약을 들이켰다. 빈곤층의 죽음이 있을 때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핵심적인 사회문제로 주목받았다. 마침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공약했다. 박 장관 역시 취임 이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해 노력하겠노라 이야기했다.

그리고 근 삼년이 흘렀다. 기초생활보장제도와 별 상관 없이 살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 기준이 폐지된 것으로 안다. 지난해 10월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고,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 이행안이 수차례 발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지 않았다. 부양의무자가 중증장애인이나 노인인 경우 등 몇개 인구집단에게 ‘완화’ 조치가 있었을 뿐이다. 그 결과 지난 8월 관악구에서는 모자가 아사한 채 발견됐다. 이혼한 전남편과의 관계를 증명하지 못한 모자는 급여 신청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한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7년 복지부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제도 종합계획안’에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로드맵을 담겠노라 밝혔다. 얼마 전 보도자료는 살짝 수정됐다. ‘제2차 기초생활보장제도 종합계획안’에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로드맵을 담겠다는 내용으로 변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계·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계획이 생계급여만 폐지하는 것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의료급여에서 조금은 해주니까 괜찮은 게 아니다. 이런 식의 완화 조치는 2019년에도, 2018년에도 있었지만 수급자 수는 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농성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시작하면 너무 복잡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나는 이런 복잡함에 기시감이 든다. 온갖 복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신청만 하면 도와준다는 식으로 동네 곳곳에 나부끼는 현수막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정작 도움받을 곳이 없다던 가난한 이들이 바로 이 복잡함에 갇힌 사람들이다. 자식들에게 도움받을 길이 없다며 수차례 읍소했지만 ‘법이 원래 그렇다’는 답변만 받고, 결국 시청 앞에서 독극물을 들이켜야 했던 이씨 할머니가 바로 이 복잡함에 갇혔다.

몇마디 말로 단순하게 승리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가난한 이들은 자꾸 복잡하게 패배하고 있다. 빈곤층의 소득이 나날이 줄어들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서 사람이 굶어 죽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만 자꾸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 복잡함에 대해 집요해져야 할 때다. 우리는 지난 17일 빈곤철폐의 날, 청와대 앞에 농성장을 차렸다. 빈곤과 이를 해결하겠다는 선언은 넘쳐나는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곳이다. 우리는 대통령에게 부양의무자 기준을 진짜 폐지할 것인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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