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터뷰]
김지희씨는 지적장애 기타리스트다. 고2때 처음 기타를 잡고 핑거스타일 주법에 빠졌다. 그는 기타를 통해 처음으로 스스로 무언가 하고싶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지난 7월에는 첫 싱글곡 '엄마의 뒷모습'을 발표했고 그의 성장스토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에 담겨지기도 했다. 장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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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는 엄마 다리 뒤에 숨어 항상 울던 아이였어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일찍 세상에 나온 지희씨는 걸음마도, 대소변 가리기도 늦었다. 말을 가르치려 해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여섯 살이 되어서야 겨우 ‘엄마, 아빠’를 소리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직후 정신지체 2급 판정을 받았다.
그의 곁에는 항상 그림자처럼 엄마 이순도씨(오른쪽)가 함께 한다. 엄마의 소원은 지희씨가 혼자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풀어낼 수 있는 공연을 하는 것이다. 장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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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가 세상과 손잡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 미술학원에 보내고 언어치료도 병행했다. 고등학교는 장애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보냈다. 비장애인들과 어울리며 생활하면 한 가지라도 배울 점이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고등학교만 마치면 둘이서 세상 어디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생각이었어요”
고2 때 아버지의 권유로 기타를 처음 잡았다. “처음엔 코드 몇 개만 연주할 줄 알았는데 흠뻑 빠져들더라고요” 핑거스타일 연주 동영상을 스스로 찾아보며 “엄마 나 이거 가르쳐 줘”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무언가 하고 싶다를 의지를 드러냈다.
지희씨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핑거스타일 연주가 장점이다. 장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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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씨는 음표가 그려진 악보를 볼 줄 모른다. 대신 음계를 숫자로 치환한 타브(TAB)악보를 익혔다. 레슨 선생님의 연주하는 손가락을 녹화해 그대로 따라 하며 곡을 익혀나갔다. 한 번 익힌 곡은 절대 잊지 않는다. 기타를 배운지 6개월 만에 나간 ‘전국 장애인학생 음악콩쿨’에서 당당히 관현악 부분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특전으로 진행된 갈라쇼에서 그는 처음으로 ‘무대에서의 좌절’을 맛봐야 했다.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겨우 한 곡을 마치고 펑펑 울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고 객석이 깜깜하니까 두려웠나 봐요”
지난 2016년 롤모델인 기타리스트 정성하와 함께 연주하는 모습. [사진 이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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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담대해지기’ 훈련이 시작됐다. 엄마는 지희씨를 이끌고 길거리, 지하철 등에서 버스킹 공연을 시작했다. 드라이브하다가 카페에 들어가 “연주 한 번 들어보실래요?”라고 주인에게 말하고 즉석 공연을 하기도 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는 무대가 최선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무대가 작든, 관객이 한 명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코가 기타에 닿을 정도로 수줍어했어요. 점점 허리가 펴지더니 관객들에게 인사도 잘하게 되었죠” 그렇게 진행된 무대가 지금까지 500여 회에 달한다.
지난 2018년 강릉아트홀에서 열린 평창동계문화패럴림픽 개막축제에서 KBS교향악단과 비발디곡으로 협연하는 김지희씨. [사진 이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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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씨는 현재까지 약 500여 회의 공연을 가졌다. 사진은 대전교도소 직원 대상 스토리텔링 콘서트 모습. [사진 이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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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무대에서도 차근차근 연주자의 경력을 쌓아갔다. 지난 2013년에는 대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평창 동계스폐셜올림픽 세계대회 폐막식에서도 독주를 펼쳤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세 차례 미국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그를 찾는 곳도 많아졌다. 롤모델이었던 정성하 기타리스트의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에 초대받기도 했다. 현재도 장애인문화협회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엄마는 이 모든 것을 기적이라고 말한다.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스틸컷. [영화사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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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학원에서 화장실도 안 가고 말없이 그림만 그리던 아이였어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벽만 쳐다보기도 했죠. 그랬던 지희가 관객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서툴지만 차분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어요”
지희씨는 그림으로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김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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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씨는 조금 더 자신 있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갔다. 기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첫 싱글 데뷔곡인 ‘엄마의 뒷모습(작곡 김은성, 편곡 김은성·김지희)’을 발표한 것이다. 지희씨가 말했다. “엄마가 짐을 많이 들고 다니는데 뒷모습을 생각하면 울컥할 때가 많아요. 항상 고생하고 계시는구나 하고요” 엄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기타 선율에 잔잔하게 녹아내렸다.
그가 그려가는 희망의 이야기는 지난달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감독 현진식, 영화사 풀)’로 만들어졌다. 서툴렀던 연주나 기타를 둘러메고 연주 장소를 찾아다니는 모습 등이 오롯이 펼쳐졌다.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스틸컷. [영화사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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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지희씨는 조용히 성장해갔다.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리고 더는 무대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엔 실수도 잦았는데 공연하다 보니 익숙해졌어요. 관객이 많든, 적든 상관없어요. 매 순간 행복합니다”
지희씨의 꿈은 '희망을 전하는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장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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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연주 여행에 나설 때 지희씨는 자신의 손만 바라봤다. 지금은 관객의 호응에 기뻐하며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엄마의 뒤에 자리하기보단 성큼 한 걸음 나아가기도 한다. 지희씨의 꿈은 ‘희망을 전하는 기타리스트’다. “지금처럼 항상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싶어요”. 다음 순간에 만날 그의 모습이 기대되는 이유다.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예고편 영화사 풀]
■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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