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박찬경의 '모임'
“목적·동기 없이 모이기 어려운 시대
따뜻한 연대감 위한 대안으로 구상”
부처열반 등 불교색 진한 영상·사진
재난 대한 '미술관 역할' 묻는 설치도
박찬경의 ‘해인’(2019)과 ‘작은 미술관’(2019).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제5전시실의 가벽에 낸 창을 통해 들여다봤다. 올해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가 선정한 박찬경의 ‘모임’ 전은 거대한 박스구조가 특징이다. 전체를 연결하되 중간중간 창을 뚫어 안팎이 서로 소통하게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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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첫 장면. 대형 화물선에 실린 컨테이너가 항만으로 들어선다. 무엇인가 대단한 물건이 들었을 듯한 분위기. 그러나 뭔지는 알 수 없다. 장면전환 1. 산에 오르는 중년여성 ‘보살’이 보인다. 보살은 산중에 컨테이너가 놓일 만한 곳을 찾아가는 중이다. 장면전환 2. 젊은 여성 ‘가혜’는 산속의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하고 다닌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른 사찰에서 자신의 전생을 본다. 장면전환 3. 보살이 마침내 컨테이너에 도착한다. 늦었지만 많이 늦은 건 아닌 듯하다. 모르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이고’ 있다.
흑백필름이 무겁게 돌아가고 있는 이곳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제5전시실. 두터운 커튼이 드리운 한 공간이다. 작은 스크린을 꽉 채운 건 55분짜리 HD영화 ‘늦게 온 보살’(2019)이다. 검은 화면을 더욱 검게 만든 건 네거티브 방식. ‘빛을 받으면 밝고 못 받으면 어둡다’란 상식을 뒤집었다. 그런데 형식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이 영화가 말하려는 내용은 뭔가. 컨테이너와 산, 방사능과 전생, 거기에 ‘모임’까지. 어떤 개연성 아래 묶어둔 집합체인가. 아니 개연성을 잃어버린 단면을 묶은 건가.
박찬경의 HD영화 ‘늦게 온 보살’(2019) 중 한 장면. 네거티브 방식으로 제작한 55분짜리 흑백필름이다. 컨테이너와 산, 방사능과 전생 등을 키워드로 ‘부처 열반’이란 오래전 종교적 사건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란 동시대의 재난을 하나로 묶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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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듯 모를 듯한 이 작품은 이 사람의 구상에서 나왔다. 작가 박찬경(54). 분단과 냉전, 민간신앙과 동아시아 근대성 등을 주제로 한 영상·설치·사진작업으로 국내외 미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아왔던 이다. 덕분에 타이틀도 여럿이다. ‘작가’는 물론 감독·비평가·기획자 등. 영화감독 박찬욱(56)의 동생이란 타이틀도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제대로 기량을 발휘할 자리를 마련한 건데. 국립현대미술관이 현대자동차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다.
대규모 개인전으로 꾸린 전시명은 ‘모임’(Gathering). 말 그대로 ‘어떤 목적 아래 때와 곳을 정해 모이는 일’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좀 부족하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한목소리를 내는, 긴밀히 연결된 공동체다”로 시작하는 박 작가 식 해설이 덧붙어야 의미가 좀더 살아난다. “그런 공동체가 자칫 전체주의 공동체가 되기도, 전혀 다르게 왜곡되기도 하는데. 난 그저 공원에 모인 사람처럼 느슨하고 따뜻한 연대감을 위한 대안으로서의 ‘모임’을 구상했다.”
작가 박찬경이 자신의 작품 ‘작은 미술관’(2019)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왜 미술관의 벽은 높아야만 하는가를 생각했다”며 “엄숙하고 권위적인 미술관이 아니라 담장 높이의 벽 아래 누구나 모일 수 있는 낮은 미술관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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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주체가 반드시 민중이고 군중이어야 하나”
‘모임’ 하면 으레 떠오르는 ‘민중·군중’ 등에 대한 박 작가 특유의 의심이 발단이란다. 모든 모임의 주체가 반드시 민중이고 군중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 말이다. 그래선가. 전시작에는 전시를 위해 동원한, 최소한의 민중·군중도 없다. 차라리 ‘모이다’란 행태에 집중했다는 것이 맞을 거다.
대여·수집한 미술작품·사진·병풍 등을 ‘모아’ 박 작가 자신의 필체로 벽에 설명까지 쓴 ‘작은 미술관’(2019)이 그렇다. 중국 화첩서 찾은 그림 ‘대나무 의자에서 잠자는 사람’(작가미상, 원·명대)이, 전선택이 그린 회화 ‘초대’(1979)와 열을 맞추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건설되는 현장사진(1985)이 인터넷에서 찾아냈다는 사진 ‘북한의 산신당’과 한 공간에 들 수 있는 건 ‘모임’이어서 가능했을 터.
박찬경의 ‘작은 미술관’(2019) 중 한 점인 전선택의 ‘초대’(1979). ‘작은 미술관’은 작가가 대여·수집해 큐레이팅한 미술작품·회화·사진·병풍 등으로 꾸몄다. 작품 아래 벽에 쓴 설명은 작가의 친필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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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2019) 역시 다르지 않다. 작품은 일본 사진작가 카가야 마사미치, 식물학자 모리 사토시가 후쿠시마서 채취한 생물·사물 이미지들을 박 작가가 촬영한 사진에 오버랩한 형태. 방사능 피폭이란 재난의 현실을 일깨우려 한 목표가 ‘모였다’.
‘쌍림열반도’(부처가 80세 되던 날 사리쌍수 아래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치고 누워 열반에 드는 모습을 그린 그림)에 착안한 작품도 있다. 박 작가가 국내외 사찰을 다니며 부처의 열반에 슬퍼하는 동물들을 클로즈업해 촬영한 뒤 디지털프린팅해 건 ‘모임’(2019). 여기에 뒤늦게 도착한 애제자 가섭을 향해 열반에 든 부처가 양발을 내밀었다는 ‘곽시쌍부’ 설화를 나무통과 기계장치로 재현한 ‘맨발’(2019) 등을 한 공간에 ‘모았다’.
박찬경의 ‘모임’(2019)과 ‘맨발’(2019). ‘쌍림열반도’(부처가 80세 되던 날 사리쌍수 아래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치고 누워 열반에 드는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 착안했다. 부처의 열반에 슬퍼하는 동물을 클로즈업해 촬영한 디지털사진 ‘모임’ 아래, 나무통과 기계장치로 ‘곽시쌍부’(뒤늦게 도착한 애제자 가섭을 향해 열반에 든 부처가 양발을 내밀었다는 설화)를 재현한 ‘맨발’을 설치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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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시멘트판을 ‘모아’ 마당 같은 전시장에 깔아둔 ‘해인’(2019)도 빠뜨릴 수 없다. 세계의 만물이 도장을 찍은 듯 바닷물에 뚜렷하게 비쳐 보인다는 해인. 박 작가는 이를 잔잔하게 흐르는 혹은 격렬하게 요동치는 파도로 표현해 16장의 정방형 시멘트판에 담아냈다.
눈치챘겠지만 이번 전시의 특징은 박 작가의 작업을 큐레이팅으로 확장한 형식을 취한다. 작가 자신이 창조한 작품에 기성작품을 수집·배치하며 주제성을 확실히 다지는 형태 말이다. 어찌 보면 ‘순수한 모임’의 어려움을 이렇게 에두른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제 박 작가는 “요즘 유대가 힘들지 않느나”며 “목적·동기 없이 그냥 모이기는 어려운 시대”란 말로 전시의 주제를 아우르기도 했다.
박찬경의 ‘해인’(2019). 거대한 시멘트판을 마당 같은 전시장에 깔았다. 때론 잔잔하게 흐르는, 때론 격렬하게 요동치는 각기 다른 모양의 파도가 16장의 정방형 시멘트판에 담겼다. 뒤로 ‘작은 미술관’(2019)에 설치한 병풍 몇 점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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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박 작가 의도와는 달리, 전시는 쉽지 않다. 전시를 기획한 임대근 학예연구관은 “캐주얼하고 농담에 가까운 전시라고 한 작가의 말에 당혹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를 시멘트판에 찍어보면 유머러스할 것”이란 ‘해인’ 앞에선 웃음코드를 찾기 힘들고, “부처의 설화가 어떤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는 시대를 희화화했다”는 ‘맨발’ 앞에선 진지해질 수밖에 없으니. 게다가 말이다. 불교색 짙은 배경에, 미술관의 역할까지 따져 묻는다. 국가·사회 재난 이후 미술관은 또 미술언어는 시대상황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지, 결국 벽을 낮춘 ‘작은 미술관’이 대안이어야 하지 않는지 성찰을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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