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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60년 공부 깨달음…형태 멋부리는 건축은 빛 바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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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건축』 펴낸 김종성

유럽 건축 답사 10여년 결과물

“내년 2·3권 나와…5권 출간 목표”

기본에 충실해야 오래 아름다워

중앙일보

자신이 설계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선 건축가 김종성씨. ’시간이 흘러도 진부해 보이지 않는 것이 좋은 건축“이라고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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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에 서울 남산 힐튼호텔을 설계했던 건축가 김종성(84·서울건축 명예대표) 씨가 최근 책 한 권을 펴냈다. 독일 건축전문 출판사 바스무트(Wasmuth)에서 한글과 영어를 병기해 인쇄한 『로마네스크 건축』 이다. 지난 14년간 그가 유럽 도시를 답사하며 로마네스크 건축을 탐구해온 여정의 첫 번째 결과물로 독일과 벨기에의 로마네스크 건축을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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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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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세대 건축가로 서울역사박물관,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종로 SK빌딩, 육군사관학교 도서관 등을 설계해온 그가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슬러 서양 건축의 원류를 파고든 것이다. 이번 책은 5권 시리즈로 이어질 대장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20대부터 지금까지 60년 넘게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로마네스크 건축을 주제로 이미 두 번째 책(스페인·포르투갈 편)을 탈고했고 요즘 세 번째 책(이탈리아 편) 작업을 하고 있다. 내년 상·하반기에 두 권을 연이어 내고 이어 프랑스 편과 영국 편(중세건축)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며 2016년부터 서울 삼성동에 지어질 현대차그룹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프로젝트의 마스터 플래너(설계책임 건축가)로도 참여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분주하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그가 설계한 서울역사박물관 뒤뜰에서 만났다.

Q : 특히 로마네스크 건축에 집중한 이유는.

A : “서양 건축사를 살펴보면 로마네스크 건축 뒤에 고딕 건축이 등장하고, 이후 피렌체에서 태어난 르네상스 건축, 바로크 양식 등으로 그 흐름이 이어진다. 로마네스크 이후의 건축은 건축의 기본 원칙이 달라진 게 아니라 그것을 갈고 닦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매료된 것은 로마네스크 건축의 공간 구성 요소들이 융합하는 방법, 즉 기본적인 가구법(架構法)에 관한 것이었다.”

Q : 보통 사람들은 고딕에 더 익숙하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건축의 차이는.

A : “나도 1956년 미국 일리노이 공대로 유학 가 건축사 강의에 빠졌을 무렵 고딕의 아름다움에 끌렸던 기억이 있다. 건축사에 정말 아름다운 고딕 성당들이 많다. 그런데 고딕 후기에는 과잉된 장식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내겐 그 과잉이 덜한 로마네스크의 양식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건축가 김종성은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인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1886~1969)와의 인연으로 유명하다. 서울대 재학 중 일리노이 공대로 유학 가 미스를 만났고 대학원 졸업 뒤 미스의 건축사무소에서 11년을 일했다. 이어 일리노이 공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힐튼호텔 설계를 위해 교직을 떠났다.

그렇다면 9세기에 시작한 로마네스크와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의 관계는 무엇일까. 그는 “그 발생 과정에 닮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이의성씨도 이번 책에 다음과 같은 해설을 보탰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서양건축을 성격 지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네스크와 모더니즘은 앞선 시대의 사회·정치적 변화와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흡수해 건축적으로 꽃피웠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Q : 로마네스크 건축이 현대 건축에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A : “군더더기 없이,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바로크 건축은 17~18세기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건축 양식이었지만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들에게는 혐오 대상이었다. 바로크의 그 과잉된 장식이 모더니즘의 눈으로는 공격 대상이 된 거다.”

5년 전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건축에도 진실이란 게 있다. 그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시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미지·형태에만 매달리는 건축은 시간이 지나면 진부해 보인다는 얘기였다.

Q : 멋 부리지 않고 구조와 기능, 아름다움이 일치하는 건물을 강조해 왔다.

A : “맞다. 현대 건축이 디지털 시대에 들어선 뒤 너무 컴퓨터에 의존해 재미있는 형태를 만드는데 경도됐다. 이 점을 조심해야 한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건축의 아름다움의 원천인 구조와 비례 등 본질적인 것에 충실한 건물이 수백년을 지나도 아름다워 보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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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힐데스하임에 자리한 성 미하엘 성당 내부. 건축가 김종성씨가 직접 촬영했다. [사진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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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보르즈의 성 베드로 성당. 로마네스크 건축물 중 걸작으로 꼽힌다. [사진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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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책에 소개한 건축물 중 특히 주목해야 할 것으로 독일 중세도시 힐데스하임에 위치한 성 미하엘 성당과 보름즈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꼽았다. “1010~1031년 사이에 지어진 성미하엘 성당은 사각 기둥과 원주의 배치 등 요소가 조각적·입체적으로 조화를 이룬다”고 했다. 성베드로 대성당에 대해선 "모든 요소가 잘 정제돼 있으면서 특히 비례가 매우 아름답다”고 설명했다.

Q : 서울의 현대 건축 중 주목할 것은.

A : “최근에 지어진 것 중엔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용산 아모레 퍼시픽 사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건축의 기본이 무엇인가를 잘 표현한 건축물이다. 좀 더 와일드한 조형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매우 절제했고 원칙적인 건축의 덕목을 고스란히 심었다.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설계를 시공 도중에 임의로 변형하지 않고 완성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모범적이었다. 민현준(홍익대 교수)이 설계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좋은 건축이다.”

Q : 앞으로의 한국 건축 어떻게 보나.

A : “지금 젊은 세대가 엄청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수련도 많이 된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현재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기회만 주면 한국 현대 건축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이 건축가들에게 도전할 과제를 줘야 하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의무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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