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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손들어 인사하니 조리개가 ‘활짝’…인공지능, 예술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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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과학기술 입은 현대미술

매진 사례 이끌었던 ‘레인룸’ 이어

관객 움직임에 반응하는 무당거미

인간 실루엣 쫓는 기계 팔까지…

난해하지 않은 과학적 원리 기반

인간의 삶·자연·내면 시각적 표현

수십개 센서로 신기한 경험 선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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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당거미가 전시장에서 예술가로 등극했다. 전시장 벽면 한편에 거미줄을 치고 눌러앉아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또 다른 설치 작품을 만드는 중이다. 거미와 주변 먼지의 움직임이 정밀 감지장치에 의해 증폭돼 소리로 울리고, 관객의 움직임을 거꾸로 거미에게 전달해 거미줄을 치는 데 일정한 울림과 리듬을 넣어준다.

#2. 관객이 움직이는 발판을 타고 물이 찰랑거리는 수조 한가운데로 다가간다. 거기엔 진화를 거듭해 마침내 태양의 모양으로 변신한 인공지능 조형물이 반짝거리며 기다리고 있다. 관객이 손을 들어 인사하면, 태양이 된 인공지능은 표면의 둥근 조리개들을 열고 역시 반가운 감정을 표출한다. 그렇게 인격화된 기술은 원형 오브제의 태양으로 변해 관객과 만난다.

#3. 어둠 속 평행선으로 가는 두개의 레일 양쪽에 각각 7개의 기계 팔 장치가 달려 팔 끝에 빛나는 전구 7개를 움직이면서 달린다. 움직이는 기계 팔은 정확히 달려가는 인간의 실루엣을 빛점으로 펼치면서 나아간다. 그렇게 기계 팔이 빛으로 빚어내며 다가오는 인간의 상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신기함과 왠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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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세 유형의 전시는 지금 한국 미술판 여기저기서 실제로 펼쳐지고 있다. 과학기술이나 자연과학의 상상력을 예술과 접목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이 수년 전부터 세계적 반향을 일으키는 가운데 최근 국내에도 이런 전시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첫번째는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가 거미를 끌어들여 협업한 개인전(12월8일까지) 현장이고, 두번째는 지난달 18일 개막해 이달 3일 끝난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의 아트랩 프로젝트에 나왔던 이장원 작가의 인공지능 가상 설치 작업이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은 지금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적인 테크놀로지 기반 아트그룹 랜덤 인터내셔널의 전시 ‘피지컬 알고리즘’전(내년 1월31일까지)의 대표작 <15개의 점>이다.

2016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물, 공기, 바람, 안개 등의 비물질적 소재로 인간의 감성과 상상을 건드리는 대형 개인전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 호평을 받으면서 이런 종류의 작품들이 국내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과학기술과 예술이 결합한 전시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우선 난해하지 않은 과학적 결과물이나 원리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단면이나 인간의 내면, 삶의 조건 등에 대한 통찰·성찰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대중 친화적 요소가 있고 흥미로운 과학기술 현상을 증폭·변형시켜 보여주는 만큼 강한 설득력과 시각적 매력을 가진다. 일례로 랜덤 인터내셔널이 열고 있는 ‘피지컬 알고리즘’전의 <오디언스>는 관객이 보는 방향과 동선을 천장의 센서가 감지해 수십개의 거울을 일제히 움직여 관객의 상을 다르게 비춰 보여준다. 또 다른 빛 설치 작품 <우리 미래의 자신들>(Our Future Selves)은 관객이 황동선 다발로 된 작품 옆을 지나가면, 늘어선 다발에서 엘이디의 빛점들이 반짝거리며 나타나 마치 관객의 윤곽이나 영혼의 형상처럼 스쳐 지나가는 신비스러운 경험을 선사한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지난 8월부터 열리고 있는 랜덤 인터내셔널 그룹의 또 다른 대표작 레인 룸 전시는 인공 비가 쏟아지는 폭우 속을 걸어가도 비를 맞지 않게 하는 첨단 센서를 활용해 관객의 동작 퍼포먼스를 끌어내며 매진 사례를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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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자연과학 테크놀로지 기반의 전시에 환호하는 건 근본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요약되는 첨단기술 문명 시대가 인간에게 주는 불확실성 때문이기도 하다.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나노기술, 양자컴퓨터, 유전자공학 이런 것들이 지금 알게 모르게 인류의 삶과 미래를 바꾸고 있다. 하지만 부와 정보력을 지닌 일부 유한층이나 기술 선진국의 국민이 주된 혜택을 누릴 뿐, 개발도상국이나 정보 빈곤층과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구체적인 변화의 방향성이 일반 대중에게는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는 상황에서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한 시각예술가들의 예지적이고 기술기반적인 작업에 시선이 쏠리게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술평론가인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등 다가오는 디지털 문명의 시대엔 갈수록 인간의 설 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인데, 미래에 대해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해법을 모르니 대중의 눈길이 예술 쪽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지난해 백남준 미술상 수상 작가 트레버 패글렌의 수상 기념전에서는 전세계의 정보 감시를 총괄하는 미국의 군부 비밀시설 등을 집중 촬영한 이미지나 인간의 시선과 전혀 다른 세상의 이미지 체계를 습득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의 교육 프로그램 도상들이 적나라하게 나와 섬뜩한 감흥을 안기고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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