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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빈민 80만명이 쓰레기 태워 난방…100m 앞도 안보이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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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과의 전쟁 -도시이야기 ③몽골 울란바토르

중앙일보

몽골 울란바토르 서북쪽 외곽에 위치한 칭길테 지역의 언덕배기 게르촌에서 내려다본 아래쪽 울란바토르 도심. 이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만 영하 7도까지 떨어진 추위 탓에 난방이 늘어 아침 도심엔 오염물질이 고였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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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오전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자욱한 먼지가 깔렸다.

아직 10월 초인데도 새벽 기온은 영하 7도까지 떨어졌고, 추위를 이기기 위해 난방을 하면서 오염물질이 배출된 탓이다.

바람도 거의 없어 배출된 먼지는 그대로 도심에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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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오전 울란바토르 칭겔테 지역 인근 게르촌에서 측정한 미세먼지는 '나쁨', 초미세먼지는 '매우 나쁨' 수준이었다. 새벽에는 더 심했지만 아침부터 바람이 불면서 빠르게 미세먼지가 줄어든 수치다. 겨울에는 이보다 서너배 심각한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매일같이 나타난다고 한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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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에 차들이 움직이면서 먼지는 조금 흩어지긴 했지만, 시 외곽에 위치한 칭겔테 지역 산자락 마을은 이날 오후까지도 뿌옇게 구름처럼 초미세먼지가 뒤덮고 있었다.

먼지가 가장 심하게 고여있는 곳 바로 옆 언덕배기에서 간이측정기로 농도를 재봤다.

미세먼지(PM10)는 ㎥당 103㎍(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으로 ‘나쁨’ 수준, 초미세먼지(PM2.5)는 91㎍/㎥로 ‘매우 나쁨’ 수준이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본 지 5분도 채 안 됐는데 눈이 따갑고 목이 까끌까끌해졌다.

동행한 현지 교민은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지 않아 아직은 양호한 수준”이라며 “겨울엔 지금보다 서너 배는 더 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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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오전 울란바토르 칭길테 지역 게르촌 인근 저지대로 내려가 본 모습. 고농도 초미세먼지에 시내가 뿌옇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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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때는 판자촌…미세먼지 '세계 5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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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파란색 표시가 된 곳에 미세먼지 측정소가 있다. [구글 위성지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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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盆地)다.

해발고도 1350m로 시 전체가 몽골고원에 위치해, 바람이 조금만 불면 대기확산이 잘 되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면 시내에서 발생한 먼지가 그대로 누적될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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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촐로트 게르촌에서 바라본 칭길테 지역 게르촌. 울란바토르를 둘러싼 북쪽 산등성이마다 게르촌이 형성돼있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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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를 둘러싼 산등성이마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현지에선 ‘게르(Ger) 촌"이라고 부른다.

게르는 원래 천막 형태의 몽골 전통 가옥을 말하지만, 게르 촌에는 현대식으로 개조하거나 판자로 지은 형태의 집도 많아 과거 한국의 ‘판자촌’과 같은 개념이다.

게르 촌은 다른 지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빈민촌이다. 대부분 아직 전기‧수도 설비가 없다.

게르 촌은 울란바토르 대기오염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영하 30도가 드물지 않은 몽골의 겨울을 나기 위해선 난방이 꼭 필요한데, 전기‧가스 난방이 어렵다 보니 값이 싼 갈탄‧석탄‧쓰레기 등을 그대로 태운다.

이때 발생하는 오염물질이 겨울이면 도시를 꽉 채운다.

몽골 전체 인구 300만 명 중 150만 명이 울란바토르에 살고, 울란바토르 시민의 58%가 게르 촌에 거주한다.



"마스크 써도 목 아프고, 없던 알레르기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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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촐로트 게르촌은 시립 쓰레기매립장(과거 소각장) 바로 옆에 있다. 지난달 7일 이곳을 찾았을 때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 공기가 깨끗했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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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7일 울란바토르 인근에서 가장 오염이 심하다는 울란촐로트를 찾았다.

시립 쓰레기장과 게르 촌이 붙어있어, 과거에는 쓰레기장에서 소각하며 나오는 매연과 게르 촌 주민들이 연료로 쓰레기를 태워 나오는 매연이 합쳐져 ‘쓰레기 마을’이란 오명이 붙었던 곳이다.

울란촐로트 바로 아래 지역에는 화력발전소까지 있어 게르와 화력발전소 미세먼지가 고여 ‘먼지 웅덩이’를 이룰 때도 있다.

울란바토르 시청 조경국의 브레브더르지(36) 중앙매립장 관리소장은 "원래도 겨울엔 공기가 늘 나빴지만, 2012~2013년부터 급격히 나빠져서 심할 때는 100m도 안 보일 정도로, 사람도 잘 안 보일 정도로 사방이 뿌옇다”고 전했다.

그는 “이곳에서 9년 동안 일했는데, 소각장 매연에 더해 게르 촌 매연까지 심한 계절에는 목 따갑고 눈도 간지럽고, 일하기도 힘들다”며 "소각할 때는 필터 있는 마스크를 쓰고 작업해도 목이 매우 아프고, 겨울이면 오염이 더 심해져 없던 알레르기도 생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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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동북쪽 울란촐로트 지역 게르촌 위쪽에서 내려다본 시내 방향. 이곳 게르촌은 처음엔 아래쪽에만 있었으나, 점점 위쪽으로 확대됐고 지금도 늘어나는 중이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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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촐로트 인근 게르 촌은 점점 확대되는 중이다.

브레브더르지 소장은 “9년 전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이 언덕 입구까지만 집들이 있었는데, 점점 언덕 위쪽까지 게르 촌이 확대됐다”고 전했다.

그는 “게르 촌 쪽을 보면 석탄을 때는 연기와 쓰레기를 태워 나는 연기는 확연히 다르게 보인다”며 “쓰레기 불법소각 신고 포상금제 도입 후로는 게르 촌의 오염도 조금 줄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연탄·보일러·심야전기…판자촌엔 효과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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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촐로트 게르촌 앞의 쓰레기장. 주민들이 이곳에서 쓰레기더미 중 쓸만한 것을 분류해간 뒤 남은 봉지들이 쌓여있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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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촐로트 게르 촌 바로 옆에 위치한 울란바토르 중앙매립장은 원래는 쓰레기 소각장이었지만, 대기오염이 심해져 2017년부터 소각을 금지했고, 지금은 매립장으로 바뀌었다.

브레브더르지 소장은 "이전엔 매립장 안에서도 타이어 등을 태웠고, 주민들이 쓰레기를 가져다 게르에서 태우기도 했다"며 "사설 재활용 업체들이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유리병 등은 미리 수거해가면서 게르 촌 주민들이 쓰레기장에서 가져갈 만한 것들이 줄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는 하루 1600톤의 쓰레기를 처리한다.

울란바토르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하루 총 3500톤은 이곳을 포함해 세 곳의 매립장으로 나뉘어 처리된다.

울란바토르 시는 유럽은행의 후원으로 시 외곽에 대체매립지를 확보한 뒤 이들 처리장을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닫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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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부터 울란바토르 시내에 나붙기 시작한 생석탄 사용 금지를 알리는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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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당국은 울란바토르 대기오염물질의 80%가 게르 촌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게르 촌 미세먼지 타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게르 촌에서 사용하는 연료는 주로 값이 싼 생석탄‧갈탄 등이다. 값이 싼 만큼 탄화도가 낮아 에너지를 많이 못 내고, 그만큼 불순물이 많기 때문에 미세먼지‧초미세먼지를 많이 발생시킨다.

몽골 정부는 이 연료 대신 가공 석탄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가공 석탄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탄소성분 함량이 높게 정제한 석탄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고 오염물질 배출량이 적지만 그만큼 비싸다.

1톤에 7만~8만 투그릭(약 3만 4000원)인 생석탄에 비해 가공 석탄은 1톤에 15만 투그릭으로 약 2배 가격이다.

그 외에도 게르 촌에서 사용하는 노후 난방시설을 새 보일러로 교체하는 사업, 난방용 심야 전기 할인, 임대아파트 입주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

전직 몽골 환경관광부 직원으로 한국 환경단체 '푸른아시아'에서 일하는 체필 팀장은 “심야 전기 할인은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인데, 보통 저녁 시간대 난방이 오후 5시부터 자정 사이에 집중되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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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울란바토르 도심. 몽골 정부가 전기차, 하이브리드 차에 대해 2년간 관세를 면제해준 탓에 도로에는 하이브리드차가 자주 눈에 띄였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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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대기오염의 나머지 20%는 노후차량 운행과 2기의 화력발전소에서 나온다.

몽골 정부는 자동차 배출 미세먼지를 잡기 위해 2년 전부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해 관세를 면제해줬고, 지금도 전기차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실제로 거리에는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가 많게는 절반까지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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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 버스. 몽골은 한국, 일본 등지의 사용연한이 끝난 버스를 많이 들여온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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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시내 도로에는 하이브리드 차량도 많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폐차 직전’ 수준의 차들도 많이 다닌다.

한국‧일본 등지에서 사용 연한이 끝난 차량을 들여와 운행하는 시내버스조차도 손님을 꽉 차게 싣고 검은 연기를 뿜으며 도로를 달렸다.

몽골 정부는 시내버스에도 매연저감장치(DPF)를 다는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아직 업체 입찰 단계에 불과하다.

길거리에서 눈으로 보기에도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차량은 경찰이 수시로 단속하지만, 별도로 미세먼지 배출량을 측정해 벌금을 매기는 등의 규정은 없다.

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유로 5 수준의 연료 사용을 권장하긴 하지만, 가격이 비싸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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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시내에 위치한 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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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시내 전력을 담당하는 화력발전소 2기는 시내 중심가인 칭기즈칸 광장에서 불과 7㎞‧12㎞ 떨어져 있다.

중앙난방식인 울란바토르 시 전체에 난방‧온수를 공급하기 때문에 추운 겨울이면 게르 촌 난방으로 인한 미세먼지와 함께 화력발전소 가동으로 인한 오염물질 배출도 함께 늘어난다.

그러나 몽골 현지 관계자들은 “화력발전소 미세먼지도 있지만 게르 촌 오염이 더 심하다”며 발전소 배출 오염물질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기오염 이민'까지 만든 울란바토르 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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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오전 몽골 울란바토르 시 남쪽에 위치한 자이승 전망대에서 바라본 3번 발전소(가까운 굴뚝)와 4번 발전소(먼 굴뚝). 울란바토르는 동쪽의 바양주르, 서쪽의 성긴아이르항, 남쪽의 복드항, 북쪽의 칭겔테 4개의 산으로 각각 둘러싸인 타원형의 분지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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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아시아’의 체필 팀장은 2011년부터 환경관광부에서 토양오염, 토지오염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2012년부터 대기오염전문가로 일한 지 7년만인 2019년 3월 일을 그만두고 NGO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몽골 정부와 울란바토르 시가 대기오염 해결을 위해 여러 사업을 하지만, 효과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7년간 대기오염과 싸우면서 “게르 촌 난방으로 인한 오염이 가장 해결하기 힘들었다”며 “지금 개선 보일러 설치 사업을 하지만, 주민들 인식 개선 안 된 상태에서 보일러만 일단 설치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했다.

체필 팀장은 “몽골 환경부도 조사를 많이 한 끝에, 가장 단기간에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석탄 사용을 금지하는 거였다”며 “정부가 나서서 가공 석탄 회사를 만들었고, 올해 5월부터 울란바타르 시내 오염이 심한 6개 구에서 생석탄 사용을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울란바타르 시내에는 ‘현장감사원’ 1368명이 오염물질 배출을 감시하며 다닌다.

울란바토르의 심각한 대기오염 때문에, 아예 다른 나라로 이주하려는 사람도 많다.

몽골 기상청 우누르바트씨는 “다른 나라로 이민이나 귀화 신청을 한 사람들이 대기 질 정보를 받아가서 비자를 받는 용도로 자료를 요청하기도 한다”며 "최근 들어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몽골 정부도 울란바토르 대기오염을 줄이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남스라이 체렌밧(Namsrai Tserenbat) 몽골 환경관광부 장관은 지난 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기오염 및 기후변화 대응 국제포럼'에서 "전체 가정의 20%에 전기난방을 보급하고, 지난해 건설한 연탄공장에서 생산한 연탄을 유통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 공기의 날 포럼'에 참석한 울란바토르시 대기오염관리부 관계자는 "울란바토르 시내를 4가지 구역으로 분류해 2등급 구역에서는 생석탄 사용금지, 4등급 구역에서는 아예 굴뚝 설치 금지 등 조치를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0년 1월부터는 울란바토르 이주를 막고, 새 거주 지역을 만들고 있다"며 "건물의 단열 효과를 높여 연료 소모를 줄이는 정책과 게르 지역의 종합적 발전 정책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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