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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트럼프 맹비난에도… 美국방부 "탄핵증언 중령 보복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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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퍼 국방장관, 원칙 천명 "내부고발자 보호 규정 지킬 것"

빈드먼, 증언 다음날 정상 출근

조선일보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미 하원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 청문회에 현역 군인 신분으로 정복을 입고 나가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소속 알렉산더 빈드먼(44·사진) 중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과 지지자들의 공격이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보복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빈드먼 중령의 의회 증언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무조건 트럼프 반대파(Never Trumper)"라고 했고, 트럼프 측근들도 "구소련 이민자라 애국심에 문제가 있다" "이중 스파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빈드먼의 직속상관인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11일(현지 시각) 기자들과 만나 "빈드먼 중령이 보복 조치를 당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방부엔 예산 낭비와 사기, 남용 등 내부 비리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규정이 있다. 이는 법에 보장된 것"이라면서 "빈드먼이든 다른 내부 고발자든 보복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이것이 국방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의 언급은 원칙적인데도 뉴스가 됐다. 지난 주말 소셜미디어에서 '빈드먼 중령이 트럼프 백악관에서 잘렸다' '불명예 전역을 하게 됐다'는 소문이 급속히 퍼지자 일부 언론이 이를 그대로 보도했다. 게다가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NSC 보좌관이 10일 CBS 인터뷰에서 "빈드먼이 계속 NSC에서 근무하고 있느냐"고 진행자가 묻자 즉답하지 않고 "현재 NSC를 절반 규모로 축소 중이다. 빈드먼 중령의 원래 소속은 국방부인데, 이런 파견자들은 모두 원대 복귀하거나 교체될 것"이라고 말해 보복 의혹을 증폭했다.

논란이 일자 11일 백악관 스테퍼니 그리셤 대변인은 "빈드먼은 아직 근무 중"이라고 밝혔고, NSC와 빈드먼의 변호인 측도 "현재 신원에 변동이 없으며 파견 기한인 2020년 7월까지 근무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트럼프 맨' 대변인부터 국방장관까지 빈드먼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는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충성한다'는 공익적 가치를 내세운 군·관료들에 대해선, 정권의 속내야 어떻든 결국 법과 시스템이 규정한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미국의 공직 사회를 보여준다.

빈드먼 중령은 지난 7월 25일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전화 통화를 직접 들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29일 하원의 탄핵 조사 청문회에 출석, "(통화 내용이) 미국의 안보를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면서 "그런 우려를 상부에 두 차례 보고하고 NSC 법률팀에도 알렸다"고 증언했다. 이라크전 상이용사인 그는 의회의 출석 요청에 불응하라는 백악관의 지시를 어겼을 뿐 아니라, 휘장을 단 정복 차림으로 나타나 '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진술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여기에 가난한 구소련 이민자 출신이 하버드대를 나와 엘리트 군인으로 해외 참전한 '아메리칸드림' 스토리가 더해져 여론의 관심이 폭발했다.

CNN에 따르면 빈드먼은 의회에서 10시간 넘게 증언한 다음 날 아침부터 백악관 코앞의 NSC 사무실에 출근해 업무를 계속 해왔다. 그는 '정치적 동기로 대통령을 공격했다'는 일각의 비난에 황당해한다고 한다. 동료에게 "의회의 출석 요구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정치인도 아니고 어떻게 그걸 거부하나. 솔직히 백악관의 불응 지시가 더 정치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약속에도, 빈드먼 중령의 신변과 지위가 100%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에스퍼 장관의 말대로 미 연방법은 공직 내부 고발자에 대해선 세계 최고 수준의 보호 체계를 갖고 있다. 고발자의 익명을 보장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금지하며 필요한 경우 이직이나 이주를 지원하고, 비위·범행 가담자가 내부 고발을 하면 형을 감경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신원이 드러나 보복이나 따돌림을 당하고 가족까지 시달리는 등 사생활이 피폐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USA투데이는 "이미 빈드먼이나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최초 내부 고발자(CIA 요원) 등에 대해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인격 살인을 가하고 있다"며 "이런 개인들의 비난은 헌법 1조 '표현의 자유'로 무사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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