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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유용원의 군사세계] '폐지' 신세였던 유럽의 징병제 화려하게 부활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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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안보 위협에 스웨덴·노르웨이 등 징병제 재도입

모병제, 인건비·충원 어려움·남북 간 병력 규모 격차 등 난관

선거용·당리당략으로 접근 말고 국가 안보 차원에서 검토해야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


"작년(2013년) 현역 입영자 32만2000명 중 심리 이상자는 2만6000여명, 입대 전 범법자는 524명에 달했습니다."

지난 2014년 8월 육군 고위 관계자는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 사건 관련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충격적 수치를 공개했다. 현역 판정 비율이 91%로 높아지면서 종전 공익요원 등으로 분류돼 군에 안 갔던 사람들이 대거 현역으로 입대, 지휘관 입장에선 '시한폭탄'과 같은 관심 병사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엽기적 가혹행위로 윤 일병을 사망케 한 28사단 사건도 가해자였던 이모 병장은 징병 심리검사 때 심리 이상자로 분류돼 상담을 받았다. 공격성이 강하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현역 판정을 받아 입대한 뒤 온 나라를 뒤흔든 사건의 주범이 됐다.

이후 현역 판정률이 80%대로 낮아져 28사단 사건 악몽은 되풀이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병역 자원 급감에 따라 2020년대 초반 이후 현역 판정률이 다시 90%대로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일 인구 급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상근예비역도 현역으로 복무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야전 지휘관들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현역 입대해 복무 중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전역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 소속 김종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역 복무 부적합 전역자는 28사단 사건이 발생했던 2014년 3328명에서 2017년 5114명, 지난해 6118명으로 급증했다. 5년 새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모병제 도입 현실적으로 어려움 많아

발등에 불 떨어진 병역 자원 감소, 병력 감축 폭탄에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모병제를 그 해결책으로 주장해 온라인 등에서 논란이 뜨겁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2025년부터 징집 대상 인원이 부족해지고 2033년부터는 (목표로 하는) 병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모병제 전환은 필수"라며 "2025년부터 단계적 모병제를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민주연구원은 병사 월급 300만원 수준의 모병제를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모병제는 선거 때마다 이슈가 됐지만 시기상조론이 대세를 이루면서 유야무야됐다. 지난 11일 여론조사에서도 반대 응답이 52.5%로 찬성(33.3%)보다 19.2%포인트 높았다. 전면적 모병제 도입이 어려운 이유는 우선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이 꼽힌다. 2022년 이후 군 병력은 대략 병사 30만명, 장교 및 부사관 등 간부 20만명으로 구성된다. 병사 30만명에게 월급 300만원씩을 준다면 연간 10조8000억원이 든다. 장교·부사관 등 간부들 월급도 올려줘야 한다. 병무청장 출신 한 전문가는 "최근 논란에서 간과하는 것 중 하나는 모병제 도입 시 간부 월급도 올려줘야 하며 군인연금 부담도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라며 "추가 예산 부담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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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큰 현실적 문제는 병력 충원이다. 숫자를 채우기도 어렵고 우수한 자원도 징병제 때보다 적게 군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대만은 2008년부터 단계적 모병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지원이 저조해 계속 지연되다 10년 만인 지난해 말에야 전면적 시행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모병제 병사와 비슷한 유급지원병은 당초 2만5000명 모집을 목표했지만 지원이 적어 2011년 1만1000명으로 줄었고 이후 5500명 이하로 떨어졌다.

국방부 산하기관인 국방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25년 모병제가 도입되고, 총 병력을 30만명(장교 5.4만명+사병 24.6만명)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지원 입대율'이 현재(4.5%)의 2배 이상인 9.9%는 돼야 충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 입대율은 20세 인구 중에서 스스로 지원해서 입대하는 비율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반도 안보 환경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육군은 2022년 36만5000명으로 줄어 북한 지상군 110만명의 33% 수준에 불과하게 된다. 모병제가 되면 병력 규모가 50만명 이하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한반도 유사시 벌어질 전쟁의 성격을 감안하면 첨단 무기만으로 대응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지난 수년간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징병제 환원 바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유럽 국가들 잇따라 징병제 재도입

냉전이 끝난 뒤 1990년대 이후 유럽에선 한때 징병제 폐지가 대세였지만 우크라이나(2014년), 리투아니아(2015년)를 시작으로 노르웨이(2016년), 스웨덴(2018년) 등이 다시 도입했다. 2001년 징병제를 폐지했던 프랑스도 완화된 징병제 부활을 추진 중이다. 이런 변화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안보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위기감이 이 국가들보다 작다 할 수 없다.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고도화되는 등 북한의 위협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군은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처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군대'가 돼가고 있다. 여기에 모병제 논란까지 가세한다면 한국군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모병제는 선거용, 당리당략 차원이 아니라 국가 안보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차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여야 정치인은 물론 군·민간 전문가 등까지 참여해 모병제, 군 복무 기간 등 병역 문제 전반을 중·장기적으로 심층 검토하는 태스크포스 구성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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