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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대기업 내부거래 ‘수의계약’ 관행 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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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관계인 부당이익 제공행위 심사지침 행정예고

총수일가 지분 ‘우회 보유’도 ‘직접지분’으로 간주

상표권 거래 등 신유형 사익편취에 대한 기준은 없어



경향신문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쟁 입찰을 거친 대기업의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일감 몰아주기로 제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총수일가에 이익을 안겨주기 위해 수의계약으로만 거래했던 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총수일가가 지분을 우회 보유한 경우에 대해서도 지분을 직접 보유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금융기관과의 계약을 통해 지분을 우회적으로 보유하며 규제를 피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응 차원으로 해석된다.

공정위는 13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 심사지침 제정안’을 행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총수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이익을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 2014년에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규정’을 공정거래법에 도입했다. 그러나 재계를 중심으로 법 위반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공정위는 심사지침을 제정하기로 했다.

■경쟁입찰 거치면 일감몰아주기 제재 않기로

이번 심사지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내부거래라 할지라도 경쟁입찰을 거치면 합리적 고려·비교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사익편취로 제재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고 있는 회사와 재무상태나 기술력, 가격 등을 고려하지 않고 대규모로 거래하는 경우에는 제재를 했다. 다만, 총수일가가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한 회사와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거나 사업기회 제공, 현금·금융 상품을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한 경우에는 경쟁입찰을 거치더라도 지금과 같이 제재를 한다.

공정위는 경쟁 입찰 요건도 명확히 했다. 형식적으로는 입찰절차를 거쳤지만 애초에 특정 계열회사만 충족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거나 시장 참여자들에게 입찰과 관련된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경우에는 경쟁 입찰을 거쳤다고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공정위가 이번 심사지침이 그동안 관행이었던 수의계약 거래 감소로 이어질 지도 관심사다. 공정위가 지난달 발표한 대기업 집단 내부거래현황을 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 회사의 수의계약 비중은 86.8%를 기록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사각지대 회사는 비중이 90.4%에 달했다. 특히, 수의계약은 기업의 수직 계열화와는 무관한 시스템통합(SI), 사업시설 관리, 부동산 업종에서 빈번하게 이뤄졌다. 정창욱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경쟁입찰 사례가 늘어나는 것을 계기로 경쟁력을 갖춘 중소·독립기업에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분 우회 보유도 직접지분으로 간주

공정위는 총수일가 지분율을 계산할 때 우회 보유한 경우에 대해서도 직접지분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주식 명의와 관계없이 실질적인 소유관계를 기준으로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지분을 잠시 금융기관에 맡겨 놓는 등의 방법으로 규제를 피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방안이라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총수익스와프(TRS)를 꼽을 수 있다. TRS는 증권사가 실제 투자자 대신 특수목적법인을 세워 주식을 산 다음, 투자자로부터 정기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2017년 최태원 SK회장은 이같은 방식으로 LG로부터 실트론 지분 29.4%를 우회 보유했다. 최 회장이 인수한 SK실트론은 한 때 상장실패로 경영난을 겪었지만 반도체업 호황으로 지난해에는 378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당시 SK가 실트론 지분 100%를 인수할 수 있음에도 최 회장이 29.4%의 지분을 인수하도록 한 것을 두고 회사기회를 유용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경제개혁연대는 “SK 측은 주식 매입 당시 실사를 한 결과, 약 3~4년 후에는 지분가치가 약 두 배 가량 뛸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향후 상당한 이득이 예상되기 때문에 지배주주인 최태원 회장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창욱 과장은 “총수일가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내부적으로 진행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간접거래를 통해 총수일가에 이익을 안겨주는 경우도 제재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금융상품을 제3자가 인수하게 하고, 제3자와 별도 계약을 체결해 간접적으로 총수 일가에 이익을 몰아주는 행위 등도 모두 제재하겠다는 의미다.

■브랜드 수수료 등 새로운 사익편취는 빠져

이번 심사지침을 두고 새로운 유형의 사익편취에 대한 제재 기준이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브랜드 수수료와 같이 부의 이전을 가져오는 거래도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돼야 한다”며 “그럼에도 이번 심사지침에는 이같은 새로운 유형의 사익편취에 대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공정위도 기업집단의 상표권 사용료 수입을 공개하면서 사익편취 혐의가 뚜렷한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적용도 병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올해까지 상표권 사용료와 관련해 제재를 한 경우는 없다. 공정위 관계자는 “상표권 수수료는 위원회의 심결례 사례가 없기 때문에 심사지침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심사지침에 담겨 있지 않은 유형의 사익편취에 대해서도 제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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