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 퇴사처럼 보여도, 사업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했다면 '해고'
‘더 많은 급여를 주고, 더 일하기 좋은 곳으로 알아보는 게 낫겠다’거나 ‘계속 남아서 일한다고 해도 월급을 주지 못할 수 있다’ 등의 말을 듣고 직장을 그만뒀다면 자진 사직이 아닌 해고에 해당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3일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A씨 등 2명이 식당 주인 B씨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강원 원주 소재 한 식당에서 근무하던 A씨 등은 지난 2016년 11월 사장인 B씨로부터 “식당 운영에 실패한 것 같다. 더는 모두를 책임질 수 없다”며 “내일이라도 나오지 않아도 할 말이 없다. 더 많은 급여를 주고, 더 일하기 좋은 곳으로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다음날 B씨는 A씨 등과 회의를 가진 자리에서 “더 나은 곳을 찾을 시간을 주겠다. 5일이면 새 직장을 찾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며 “계속 가게에 남아서 일을 한다고 해도 월급을 주지 못할 수 있다. 이후로는 손님과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해고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A씨 등은 식당을 그만뒀고, B씨는 A씨 등의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상실 신고를 마쳤다. A씨 등은 B씨로부터 해고예고수당을 받지 못했다며 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어진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A씨 등이 B씨에 의해 해고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도 같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형식적으로는 A씨 등이 자진해 식당을 그만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질적으로는 B씨의 일방적 의사에 의해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시킨 것”이라며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 등이 자진해 식당을 그만둔 것처럼 보이더라도 B씨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하게 됐다면 ‘해고’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A씨 등은 B씨로부터 문자메시지와 ‘근로를 하더라도 월급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들은 후 어쩔 수 없이 식당을 그만두게 된 것”이라며 “자진해서 식당을 그만둔 것으로 볼 수는 없다”며 “원심 판단은 해고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설명했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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