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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우아한 듯, 억척인 듯…김희애표 연기에는 ‘작은 들꽃’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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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희애가 영화에 임하는 자세]

‘우아한 거짓말’ ‘쎄씨봉’ ‘허스토리’

소소하고 깊은 울림 주는 작품들 이어

임대형 감독 신작 멜로서 주연 맡아

함께 작업했던 감독들 한목소리

끝없는 도전, 정확한 감정표현 기본

“신인의 열정과 겸허함까지 갖춰”

“영화 고를 땐 캐릭터보단 작품성”

무심코 지나치다 발견한 듯 귀한 배역

중년 여성 서사에 보탬되길 바라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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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희애의 최신작 <윤희에게>(14일 개봉)는 특별한 영화다. 그간 김희애가 장기를 발휘해온 멜로 장르이면서도 여느 멜로물과는 결이 다르다. 딸(김소혜)과 단둘이 일본 여행을 가게 된 윤희(김희애)는 비밀스러운 첫사랑을 떠올린다.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을 가슴에 묻고 오랜 세월 묵묵히 견뎌온 그다. 떠나버린 첫사랑과 재회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굳었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언뜻 보면 흔한 사랑 얘기 같지만, 사회적 관습과 편견은 이들의 사랑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미덕은 특별한 사랑을 특별하지 않게 그린다는 점이다. 이들의 사랑도 세상 보편적인 사랑과 다를 게 없음을 은은하게 설파한다.

<윤희에게>는 독립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를 연출한 임대형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다. 김희애는 신인 감독이 내민 손을 망설임 없이 잡았다. “제안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들어오는 대본을 보면 세고 자극적인 것이 많아요. 그런데 이 시나리오는 읽으면서 거부감이 전혀 안 들었어요. 길에서 무심코 지나쳤다 뒤늦게 발견한 작은 들꽃처럼 귀하게 여겨졌어요. 이렇게 귀한 배역을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희애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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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년 새 그의 출연작에선 일관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왁자지껄한 화제작보다는 소소해도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가 많다. 무려 21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우아한 거짓말>(2014)부터 <쎄시봉>(2015), <사라진 밤>(2018), <허스토리>(2018)에 이어 <윤희에게>까지…. 그가 보여준 연기는 때론 당차고 때론 파격적이고 때론 섬세하다. 김희애는 “영화를 고를 때 어느 하나라도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한다. 내가 연기할 캐릭터보다도 작품 자체가 좋으면 선택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우아한 거짓말>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허스토리>를 선택한 것도 그래서다.

그의 연기 인생은 사실 영화에서 출발했다. 10대 시절인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날>로 데뷔했다. 이어 몇편의 영화를 더 찍었으나 <101번째 프로포즈>(1993) 이후에는 스크린 대신 안방극장에서 활약했다. 그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참여하면서 큰 전환점을 맞았다고 했다. “예전부터 김수현 선생님 작품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아기 낳고 복귀하니 연락이 왔어요. 뭐든 배우겠다는 자세로 <완전한 사랑> 대본의 지문 속 말줄임표 하나까지 따져가며 연기했어요. 어느 날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앞으로 김희애씨 대사에는 지문 안 넣을게.’ 저를 믿고 맡겨주신 거죠. 이후 선생님과 몇 작품을 연이어 하면서 그 어떤 연기학교에서보다 큰 경험과 배움을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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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에 특화된 김희애를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이는 <우아한 거짓말>의 이한 감독이다. 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40대 후반 여성 배우층이 두껍지 않은데, 시나리오를 읽다 문득 김희애 배우가 영화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드라마에서도 우아한 배역뿐 아니라 억척스러운 배역도 잘 소화해냈다. <우아한 거짓말>에선 정확한 감정 표현이 중요했는데, 김희애 배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잘해줬다”고 말했다. <허스토리>를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김희애 배우가 티브이 드라마에서 많은 성과를 보여줬지만, 영화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여지가 많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정치·사회적 맥락이 두드러지고 부산 사투리도 해야 하는 배역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힘들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극복해내더라”고 전했다.

임대형 감독이 <윤희에게> 대본을 쓸 때부터 김희애 배우를 떠올린 건 <허스토리> 때문이다. “<허스토리>를 본 주변 여성들이 다들 김희애 배우에게 반했다고 했다. 어느 성별에나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김희애 배우야말로 윤희 캐릭터에 제격이라 생각했다. 워낙 큰 배우라 기대 않고 대본을 보냈는데 선뜻 응해줘 감사했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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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들은 한목소리로 김희애의 끊임없는 열정과 노력에 놀라움을 표했다. 이한 감독은 “베테랑 배우인데도 현장에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며 대본을 숙지하고 철저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민규동 감독은 “워낙 경험이 많아 어떤 연기든 자신만만하게 소화해낼 줄 알았는데, 각 장면마다 자신을 몰아세우면서 돌파해나가더라. 신인 배우에게서나 볼 법한 열정과 겸허함이었다”고 전했다. 임대형 감독도 “그 정도 경력이면 습관적·관성적으로 연기할 법도 한데, 장면마다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붓는 걸 보고 나도 많이 긴장하며 배웠다”고 말했다.

<윤희에게>는 중년 여성이 서사를 끌어가는 영화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각별하다. 임대형 감독은 “세계적으로 여성 중심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고, 할리우드와 유럽에선 중년 여성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뒤늦게나마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앞으로도 쭉 이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김희애도 “<윤희에게>가 선입견을 깨고 중년 여성 서사의 확장에 보탬이 되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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